한국은행에서 요즘 심심찮게 파열음이 들려나온다. 김중수 총재는 지난달 부총재보 인사 때 조사·정책 등 핵심보직의 국장들을 배제하고 KDI 출신을 내정했다. 한은 62년 사상 처음으로 순혈주의를 깬 것이었지만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갈등도 빚었다. 또 지난 주말 간부 워크숍에선 “한은은 결코 사회와 유리된 절간이 아니다”며 대놓고 쓴소리를 했다. 총재는 “한은의 최대 취약점은 고위직이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질타한 반면, 한은 내부에선 총재가 자기 사람만 고속 승진시킨다는 불만을 공공연히 제기하는 형국이다.

내달로 취임 2주년을 맞는 김 총재는 진작부터 관료화된 한은 조직문화를 비판하고 김중수식 개혁을 예고해왔다. 지난 주말 워크숍에서 언급한 “선진국은 고위직이 바쁘지만 후진국은 하위직이 바쁘다”는 얘기도 취임 100일을 즈음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미 지적했던 내용이다. 간부들이 아이디어나 국제감각도 없고, 직접 연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총재가 재차 꼬집은 것이다. 한은에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총재의 인식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아래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첨삭하고 주석이나 다는 평론가만 넘친다는 비판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연공서열주의는 동시에 무사안일주의도 만들어낸다. 절간 같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총재보에 외부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고 해서 한은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반발하는 모양새도 무능함을 자인하는 일로 비친다.

한은의 진짜 문제는 그러나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지금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만 한은은 본질적 책무인 물가안정과 화폐가치 보호에서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물가가 4%로 치솟은 것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것만 해도 그렇다. 실로 무책임한 일이다. 한은법상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총재와 임직원들은 통렬한 자기 반성부터 내놨어야 마땅하다. 금리 조정에 실기하고 미국 중앙은행만 쳐다보는 천수답 신세가 된 이유도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 ‘MB물가’니, ‘묘한 기름값’ 등의 이름으로 행정부가 물가에 직접 개입하는 이런 상황은 한은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지금 한은은 독립은커녕 그 존재 이유조차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