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의료 교육 선교…벽안의 '전라도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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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씨, 한국 국적증서 받아
“4대가 117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도 2%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완벽한 한국인이 돼 기쁩니다.”
2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권재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은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53)이 환하게 웃었다. 인 소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날 법률상으로도 진짜 한국인이 된 것이다.
그는 “외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 자리에 같이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구한말부터 4대에 걸쳐 선교와 병원건립, 대북지원 등을 통해 한국을 사랑한 결실인 셈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등 선대의 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례는 있었지만 본인의 공로에 의해 특별귀화자가 된 경우는 인 소장이 처음이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인 소장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법무부 장관에게 서약할 경우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적법이 2010년 5월 개정됐기 때문이다.
인 소장은 전라도 토박이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부친이 1984년 교통사고가 나 병원으로 호송되던 도중 숨졌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1993년 한국형 앰뷸런스 차량을 고안, 보급했는데 119 응급구조 체계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 앰뷸런스 차량 한 대를 1997년 북한에 기부하면서 북한 결핵퇴치 사업을 시작했다. 유진벨재단 이사장인 친형 스티븐 린튼 씨(한국명 인세반·62)와 26차례 방북, 결핵약품과 의료장비를 무상지원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인 소장 집안의 한국과의 인연은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가 외증조 할아버지 유진벨 씨(한국명 배유지·1868~1925)를 선교사로 파송한 것. 벨 선교사는 목포 양동교회를 비롯해 20여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광주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등을 건립했다. 벨 선교사의 사위이자 인 소장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 선교사(한국명 인돈·1891~1960)도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의료, 교육 선교 활동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운동에도 동참했다. 지금의 한남대를 설립한 공로로 2010년 3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전북 군산에서 출생한 부친 휴린튼 씨(한국명 인휴·1926~1984)도 전남의 도서지역에 200여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전했다. 1960년대에는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2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권재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은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53)이 환하게 웃었다. 인 소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날 법률상으로도 진짜 한국인이 된 것이다.
그는 “외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 자리에 같이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구한말부터 4대에 걸쳐 선교와 병원건립, 대북지원 등을 통해 한국을 사랑한 결실인 셈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등 선대의 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례는 있었지만 본인의 공로에 의해 특별귀화자가 된 경우는 인 소장이 처음이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인 소장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법무부 장관에게 서약할 경우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적법이 2010년 5월 개정됐기 때문이다.
인 소장은 전라도 토박이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부친이 1984년 교통사고가 나 병원으로 호송되던 도중 숨졌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1993년 한국형 앰뷸런스 차량을 고안, 보급했는데 119 응급구조 체계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 앰뷸런스 차량 한 대를 1997년 북한에 기부하면서 북한 결핵퇴치 사업을 시작했다. 유진벨재단 이사장인 친형 스티븐 린튼 씨(한국명 인세반·62)와 26차례 방북, 결핵약품과 의료장비를 무상지원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인 소장 집안의 한국과의 인연은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가 외증조 할아버지 유진벨 씨(한국명 배유지·1868~1925)를 선교사로 파송한 것. 벨 선교사는 목포 양동교회를 비롯해 20여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광주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등을 건립했다. 벨 선교사의 사위이자 인 소장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 선교사(한국명 인돈·1891~1960)도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의료, 교육 선교 활동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운동에도 동참했다. 지금의 한남대를 설립한 공로로 2010년 3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전북 군산에서 출생한 부친 휴린튼 씨(한국명 인휴·1926~1984)도 전남의 도서지역에 200여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전했다. 1960년대에는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