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운전원들이 비상전원을 모두 상실한 상태에서도 핵연료 인출을 강행하는 등 원전 운영 과정에 규정 위반이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창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21일 “안전의식 결여로 인해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며 “사건 관련자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거나 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 발령 미실시 및 전원 상실 보고 은폐 등은 원자력방호방재법과 원자력안전법 위반으로 최대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현재 고리 1호기 폐쇄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전력계통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 후 재가동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안전위가 발표한 ‘고리 1호기 전력공급 중단 사건 조사 현황 및 향후 대책’에 따르면 고리 1호기 전원 상실은 원자로를 꺼놓고 정비를 하던 9일 저녁, 보호계전기(비상시 일부 전원을 차단해 발전기를 보호하는 장치) 시험과 전원설비 정비 작업이 겹친 상태에서 운전원들의 조작 실수로 발생했다. 외부 전원 회선이 총 3개인데 2개를 꺼놓고 정비 중인 상태에서 나머지 1개마저 끊어진 것이다.

이때 분해 점검 중이던 비상디젤발전기 1대(A)를 뺀 나머지 1대(B)가 반드시 작동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 기능이 일시 상실됐다. 고온관(냉각수가 가장 뜨거워졌을 때 지나는 관)의 온도는 36.9도에서 58.3도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 냉각수는 21도에서 21.5도로 올랐다. 다만 핵연료 손상이나 방사성 물질 누출은 없었다.

사건 이후 문병위 당시 고리1발전소장을 중심으로 은폐 논의가 이뤄졌고 운전일지, 비상디젤발전기 시험관리대장 등 모든 기록이 누락됐다. 또 사건 직후인 2월10~11일, 2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모두 먹통인 상황에서도 핵연료 인출 등 정비를 지속했다. 원전운영기술 지침서에 따르면 최소한 1개의 외부 전원과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 중인 상태에서 핵연료를 다뤄야 한다.

또 비상디젤발전기가 자주 고장났음에도 안전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 안전규제 당국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비상디젤발전기 1대(B)는 사건 이후 2월21~23일 KINS가 정기검사를 할 때는 정상 가동했으나, 26일 한국수력원자력 자체 시험에서는 일시적으로 먹통이 됐다가 정상 가동했다. 그러나 안전위가 이달 15일 현장 조사를 할 때는 또다시 먹통이었다. 박윤원 KINS 원장은 “(당국의 검사는) 육안 조사, 서류 확인, 담당자 조사 등 3가지 방법이 있는데 기계 결함은 육안 조사 외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파악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안전위는 이번과 같은 전원 상실 사고를 24시간 원격에서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KINS, 한수원 등에 구축하기로 했다. 현재는 원자로 정지 상황만 원격으로 파악할 수 있어 현장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사고를 은폐하면 알 방법이 없다.

안전위는 또 고리 울진 영광 월성 등 4개 원전 부지에 파견한 감시인력을 현재보다 5배로 늘리고 원전 정기검사 항목도 2배 늘리기로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