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단체서 세계 여성리더 양성소로…시대따라 '바른 여성상' 제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미국 최초 여성 비행사 샐리 라이드,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또 걸스카우트 출신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미국 여성 연방의원 중 3분의 2가 어릴 때 걸스카우트에서 활동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여성 리더가 되고 싶으면 걸스카우트로 시작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걸스카우트는 100년 전인 1912년 탄생했다. 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군인들을 치료하는 자원봉사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의 여성 리더 양성소’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다.

○소녀들의 꿈 따라 변신

걸스카우트 창립 당시 멤버는 고작 18명이었다. 현재 대원 수는 320만명이 넘는다. 100년간 이곳을 거쳐간 소녀들은 5000만여명에 달한다.

걸스카우트가 오랜 시간 발전을 거듭해온 것은 ‘끊임없는 변신’ 덕분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바람직한 여성상’에 대한 기준을 달리 제시했다. 이는 걸스카우트의 상징인 배지에 나타난다. 걸스카우트는 일정 시간 교육을 받거나 사회활동에서 성과를 내면 배지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육아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이 새겨진 배지를 받는다. 과거 이 배지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요리, 육아, 청소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913년 걸스카우트가 발간한 핸드북에는 “유모 배지를 받기 위해서는 하루에 두 시간씩 어린이를 가르치거나 하루에 한 시간씩 영·유아를 돌봐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기업인 양성과정 등도 생겨났다.

최근 걸스카우트가 만든 새로운 배지에는 이런 변화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색다른 분야의 배지를 만들어낸 것. ‘특수기관’ 배지가 대표적이다. 과학수사, 범죄학 수업 등에서 성과를 낸 학생들이 받는 배지다. 컴퓨터 보안, 발명, 환경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소녀들에게도 배지를 주기로 했다.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있는 걸스카우트 본부의 안나 마리아 차베스 최고경영자(CEO)는 “다양한 꿈을 꾸는 소녀들이 늘어나고 있고, 걸스카우트는 이 꿈을 따라 함께 변해왔다”고 말했다.

배지뿐만이 아니다. 걸스카우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여성엔지니어센터(SWE)와 손잡고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과정을 신설했다. 비행사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이를 통해 여성 비행사를 대거 배출해낼 계획이다. 법률가 양성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차베스 CEO는 “아직도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분야가 많이 있다”며 “여성과 남성 간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신 덕분에 걸스카우트 회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쿠키 판매에서 배우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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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카우트 쿠키’도 조직이 성장해온 비결 중 하나다. 수익금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사용하는 쿠키 판매는 걸스카우트의 대표적 실전교육 프로그램이다. 캐시 클로닌거 미국 지부장은 “걸스카우트 쿠키는 여성 리더십 양성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소녀들은 먼저 팀 단위로 쿠키를 얼마나 팔지 정한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하는 법을 배운다. 판매 목표 설정과 판매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팀원들과 의사를 조율하고 협동하는 것을 익힌다. 쿠키를 직접 팔기 위해 소녀들은 가정집 초인종을 누르거나, 길거리 판매에 나서야 한다. 세상과 맞닥뜨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도 공부다. 어떻게 하면 판매를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해법을 찾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보적인 경영윤리, 재무관리 등도 익힐 수 있다.

걸스카우트 쿠키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7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어떻게 쓸지는 걸스카우트 본부가 결정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쿠키를 만든 소녀들이 결정한다. 지난해 3200여 상자를 판매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하나 리치먼드는 “수익금 전부를 동물보호 기금으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뜻대로 수익금은 동물보호 단체에 전해졌다. 클로닌거 지부장은 “다른 수많은 소녀들도 리치먼드가 거둔 성과와 기부 과정을 통해 노력의 대가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운다”고 말했다. 이어 “쿠키를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사회의 리더가 갖춰야 할 다양한 자질을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캠프 프로그램도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시간 관리법과 위기 대응법을 익힌다. ‘국제 캠프’를 통해 다른 국가 어린이들과 어울리면서 개방적이고 넓은 시야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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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카우트는 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모든 것을 소녀들에게 맡긴다. “소녀들을 믿는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단원의 다수가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찬성하면 그 아이디어는 가치가 있고, 그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큰 성과를 내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포브스는 “작은 성과도 칭찬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소녀들을 더욱 분발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걸스카우트의 이런 프로그램 덕분에 여성 지도자가 된 이들은 자신의 딸, 손녀에게도 가입을 추천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딸 첼시아 클린턴도 걸스카우트 활동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도 마찬가지다. 로라 여사는 “걸스카우트 리더였던 어머니의 추천으로 가입했다”며 “시어머니 바버라 부시도 걸스카우트 분대장을 지냈다”고 말했다.

○성적 소수자도 받아들이는 포용성

걸스카우트 창립자인 줄리엣 고든 로는 창립사를 통해 “걸스카우트는 미국과 전 세계 소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걸스카우트는 창립 당시인 1910년대 존재했던 계급·종교 장벽에 개의치 않았다.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신도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부자도 있었고 고아도 있었다. 장애인, 공장근로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런 창립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성적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한 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사는 바비 몬토야라는 남자 아이는 최근 걸스카우트 가입에 성공했다. 몬토야는 남자 아이지만 여자 아이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 그의 걸스카우트 가입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걸스카우트는 “가족이 인정한다면 걸스카우트 입단을 환영한다”며 그를 받아들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걸스카우트는 전 세계에 걸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으며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