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대륙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인천에서 비행기로 꼬박 하루 걸려 실비오 페트로시 공항에 도착했다. 여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마주한 현지인은 입국심사대의 법무부 관리. 굳은 얼굴로 여권을 들여다보더니 “한국에서 왔느냐”며 갑자기 살갑게 물어왔다. 그리곤 책상의 한 모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단말기 위에 붙어 있는 작은 스티커.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한국국제협력단)’란 글자가 선명했다. “공항에서 쓰고 있는 이 입출국시스템은 KOICA가 지원해 구축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늘과 땅을 열다

지구 반대편에 '인프라 한류'…하늘ㆍ땅ㆍ온라인의 길 열다
루이스 크리스탈도 파라과이 민간항공관리국 자문관은 “KOICA의 도움을 받아 설치한 시스템의 사용으로 실비오 페트로시 공항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파라과이 정부가 한국의 항공시스템과 공항을 롤모델로 삼아 2단계 개혁작업에 착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흐헤 베르가라 공공건설통신부 항공인프라 자문관은 “인천공항을 모델로 공항 현대화 작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KOICA에 타당성조사를 요청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미 물류의 중심지로서 파라과이 공항을 키운다는 계획을 수행하는 데는 아시아 하늘의 허브로 자리잡은 인천공항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OICA의 도움으로 길이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은 하늘뿐이 아니다. 지도위의 철도와 도로도 조만간 새로 그려진다. KOICA는 200만달러를 들여 파라과이의 철도건설 타당성 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파라과이를 동서로 관통하는 505㎞의 철도를 놓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동서로 연결하는 작업의 기초조사인 셈이다. KOICA는 동서 횡단 철도가 생길 경우 브라질(대서양)과 아르헨티나(태평양) 3국의 물류동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실리오 페레즈 보르돈 공공건설통신부 장관은 “철도건설은 새로운 파라과이 구축의 시작점이며 이를 한국의 KOICA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철도는 파라과이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파라과이는 1856년 남북횡단철도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남미 최초의 철도다. 강성했던 파라과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파라과이는 1864년부터 7년간 아르헨티나 및 브라질과 벌인 전쟁에서 참패,국력이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전쟁 당시 파라과이 성인남자의 90%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파로 홍수가 나 철도가 물에 잠겨도 제때 복원할 수가 없었고, 철도는 자연스럽게 운행이 중단됐다.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내륙국이지만 철도가 없는 나라로 전락한 셈이다. 따라서 철도의 복원은 파라과이의 부활이란 의미를 갖는다. 풍부한 물로 인해 수력발전이 발달, 전기 값이 싸다는 점에서 전기철도를 놓겠다는 게 파라과이 정부의 생각이다. 호세 루이스 알가냐 교통차관실 기획팀장은 “한국이 전기철도에 경험이 많고 환경친화적이며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철도건설의 타당성조사를 부탁했다”며 “앞으로 한국기업들과도 좋은 협력을 맺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와 연결한 국도건설도 KOICA가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간선도로망인 국도건설에 관한 타당성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철도와 연결하는 종합 교통 인프라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220만달러 정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세상도 열다

다음달 파라과이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청을 발족한다. 한국의 정보통신부와 같은 곳이다. ICT청이 만들어지는 것은 KOICA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KOICA는 2010년 200만달러를 투입, 파라과이 ICT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전자정부 구축과 정보통신 기반 조성이 최종 목표다. 각 정부에 인터넷폰 시스템을 도입하는 간단한 것부터 정보통신 인력양성까지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계획에 따라 파라과이에 새로운 정보통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순시온 중앙정부의 통신망이 구축됐다. 파라과이 방재관리청 본부에 종합상황 통제시스템도 만들어졌다. 이민청 출입국관리 시스템이 현대화되는 등 ICT 산업육성과 정보통신 인력양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조성됐다. 물론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으로 ICT 관계자를 파견,기술전수를 받도록 했다. 한국의 전문가도 초청해 적극적인 기술이전을 꾀하고 있다.

파라과이 정부가 KOICA의 밑그림을 실천에 옮기려는 의지는 강력하다. 대통령실 산하 행정개혁위원회와 정보통신 담당관이 정부의 모든 정보통신 관련 업무를 총 지휘하고 있다.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정보통신 환경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니콜라스 페레이라 대통령실 ICT 담당관은 “한국을 롤모델로 효율적인 정보통신시스템을 만드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KOICA의 파라과이에 대한 지원은 다양하다. 직업훈련원과 재활훈련원을 아순시온과 알토 파라나에 건설, 산업인력 양성을 돕고 있다. 또 산 페드로주에 종합병원을 세우고, 아순시온 인근 3개지역에 모자병동을 만들어 빈곤층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분야에 2008년부터 3년간 들어간 돈은 모두 327만달러.

한국과 파라과이는 올해 수교 50년이 된다. 파라과이는 남미 국가 중 한국 이민자를 처음 받았고, 이곳을 거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으로 흩어진 사람이 20만명 정도 된다.우고 로이그 기획청 장관은 “오랜 기간 동안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은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파라과이의 모델이 되고 있다”며 “한국의 지원으로 파라과이가 성장하고 이를 통해 한국기업들이 파라과이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양국이 윈-윈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순시온=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