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CIO…"일 즐겼더니 열등감도 열정으로 변해"
충남 당진에서 서울로 유학 온 시골 청년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 5남매의 장남인 그는 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입학시험에서는 쓴맛을 봐야 했다. 한 해를 더 보내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생활도 쉽지 않았다. 학사경고를 맞은 데다 졸업을 앞두고 치른 기자 시험에도 낙방했다. 꿈 많았던 청년의 마음에는 열등감이 자리했다.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61·사진)의 이야기다.

김 사장은 2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열정락서2’에서 열등감으로 가득찼던 청년이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광고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풀어놨다. 열정락서는 삼성이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열고 있는 토크 콘서트다. 김 사장은 6000여명의 대학생들 앞에서 ‘나의 열정은 아이디어다’란 주제로 자신의 인생과 철학을 전했다.

제일기획 공채 출신(2기)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에 오른 그는 “광고회사에 입사했지만 광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 터라 입사 초반에는 수난이 거듭됐다”고 털어놨다. 유능한 선·후배들 사이에서 일하다 보니 또다시 열등감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김 사장은 “끈기 있고 성실하게 일을 하되 남을 인정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말했다. 월급의 10%는 책을 사는 데 썼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습관은 이때 생겼다. 그는 “동료들에게 귀를 기울이니 팀워크는 물론 성과도 좋아졌다”며 “열등감도 줄어들고 좋은 동료들은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나는 CIO…"일 즐겼더니 열등감도 열정으로 변해"
차장 때는 광고주 앞에서 광고 한 편을 설명할 때 제작물 시안을 70여개씩 만들어야 했다. 일일이 수작업을 할 때였다. 힘들었지만 ‘지략가(智略家)가 아닌 지락가(智樂家)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즐기는 사람에겐 당할 수 없다”며 “재미있게 일할 때 아이디어도 술술 풀렸다”고 설명했다.

2007년 제일기획 대표이사를 맡은 김 사장은 스스로를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최고아이디어경영자’(CIO·Chief Idea Officer)로 부른다.

“제일기획의 슬로건은 ‘패션 포 아이디어(Passion for Idea)’입니다. 35년 동안 광고만 바라볼 수 있었던 힘은 열정이었죠.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아이디어 컬티베이터(경작자)’가 돼 직원들이 잘 커갈 수 있도록 돕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CIO라고 불러달라고 한 이유예요.” 회사를 아이디어가 쑥쑥 자라는 창조적인 토양으로 바꿔나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직원들이 만화책도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아이스파’라는 사내 도서관을 만들었다.

김 사장이 35년 외길 인생을 걸어오는 동안 한국 광고시장은 지난해 기준 9 조56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제일기획에 입사한 1976년 당시에는 광고인은 잡상인 취급을 받았어요. 국내 광고시장은 그때보다 100배 정도 성장했습니다. 나 역시 말단 신입사원에서 출발해 대표가 됐죠. 끈기와 성실함, 배우는 자세로 일을 즐긴다면 열등감이 열정으로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