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는 이성적이야" 말하는 당신…머리에선 직관이 은밀히 조정한다
‘보기를 피하기 위한 퍼팅’과 ‘버디를 잡기 위한 퍼팅’.

프로골프 선수들은 어떤 퍼팅의 성공률이 높을까. 정답은 파 퍼팅이다. 파를 잡기 위한 퍼팅 성공률이 버디를 목표로 한 퍼팅보다 3.6%포인트 높다고 한다. 퍼팅의 난이도나 홀과의 거리에 상관없이 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자 데빈 포프와 모리스 슈바이처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중인 타이거 우즈의 퍼팅을 포함한 250만회의 퍼팅을 분석한 결과다.

매 스트로크에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 프로골프의 상황별 퍼팅 성공률이 크지는 않지만, 분명히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포프와 슈바이처는 이를 ‘손실(위험)회피 특성’으로 풀이한다. 골프코스는 매 홀 기준 타수가 정해져 있다. 골퍼에게는 기준점에서 하나 덜 치는 버디는 이득이고, 실수해 하나 더 치는 보기는 손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이득을 얻기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욕구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골퍼들이 강한 보기 회피 성향을 보이며 파 퍼팅에 집중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책마을] "나는 이성적이야" 말하는 당신…머리에선 직관이 은밀히 조정한다
손실 회피 특성은 ‘전망이론’의 뼈대를 이루는 세 가지 인지적 특징 중 하나다. 전망이론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설명하는 연구로,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대니얼 카너먼이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1979년 발표했다. 카너먼 교수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이 연구로 ‘행동경제학’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최근 출간된《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그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책이어서 관심을 끈다.

책에서 카너먼 교수는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정신 작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직관’을 뜻하는 ‘빠른 사고(시스템1)’와 ‘이성’을 의미하는 ‘느린 사고(시스템2)’다.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동물적 감각의 순발력, 2+2의 정답이나 한국의 수도이름 대기처럼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정신활동이 시스템1이며, 나라 살림이나 어려운 수학 방정식처럼 심사숙고한 끝에 처리하는 정신활동이 시스템2다. 그러면서 결함을 수반하는 ‘직관의 편향’에 초점을 맞춘다.

카너먼 교수는 사람들은 수집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고 말한다. 직관적인 시스템1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을 은밀하게 조종한다는 것이다.

손실 회피도 시스템1의 기능상 특징의 하나다. 사람들은 손해를 이득보다 크게 생각해 손실을 피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보통이다. 앞면이 나오면 150달러를 얻고, 뒷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잃는 동전던지기 게임을 대개는 거부한다. 100달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150달러를 얻는다는 기대감을 압도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손실회피는 개인과 조직 모두 현 상태의 변화가 최소화하기를 희망하는 강력하고도 보수적인 힘이라고 설명한다. 동물 세계의 텃세 싸움에서도 똑같이 이 손실회피 원칙이 드러난다. 대개는 자기 영토를 지키는 쪽이 성공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주의적 편향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띈다. 기업인을 포함해 대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인수·합병(M&A) 소식이 들리면 인수에 나선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수하는 기업 경영자들이 자신의 생각만큼 유능하지 못하다는 ‘교만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전사의 90%는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착각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카너먼 교수는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합리성의 초석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낙관주의가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자신감이 불확실성보다 더 인정받는다는 것. 그러면서 “과신은 누그러뜨릴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시스템1이 만든 직접적인 결과물”이라고 한다. 카너먼 교수는 직관적 사고과정에서 비롯되는 오류들을 막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첫째, 인지적 지뢰밭에 있다는 신호를 인식해 사고의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2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또 개인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하는 힘을 갖춘 조직이 오류를 더 잘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