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장·부장…'타이틀' 은 사라져 자기를 부수고 '맨몸의 힘' 믿어라
어느 날 당신의 모든 ‘스펙’이 사라져버린다면. 사장 부장 등 사회적 직위가 없어지고 땀 흘리며 축적한 재산이 사라지고 온갖 타이틀을 거품 걷어내듯 덜어냈을 때 당신은 홀로 설 자신이 있는가. 현직에 있을 때처럼 여전히 지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지금 당신에겐 ‘나력’(裸力·naked strength)이 필요하다. 이름 석 자만으로 빛날 수 있는 ‘발가벗은 맨몸의 힘’을 길러야 한다.

《니체는 나체다》의 저자는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나력이라고 말한다. “나목(裸木)이 푸른 잎을 모두 떠나보내고 맨몸으로 봄을 맞듯이 우리도 나목처럼 벌거벗은 맨몸의 나를 만나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 속 화초는 비닐막을 걷어내면 쭉정이처럼 날아가지만 추위와 싸운 야생의 잡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여름에도 부러질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화초와 잡초를 구분짓는 힘이 바로 나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저자는 니체처럼 흔들고 깨부수고 변신할 것을 주문한다. “새로운 고기를 잡고 싶으면 새로운 그물이 필요하듯 새로운 관점에서 나에게 물음의 그물을 던지라”고 말한다. 질문을 통해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욕망의 물길이 치솟는 때를 맞는데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가라고 한다.

또 파괴자가 되라고 말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사정없이 부숴버리라”고 조언한다. 그 다음은 변신이다. ‘차원이 다른 나만의 가치를 창출’하고, ‘뼛속 깊이 사무치는 대상을 만들고’, ‘천 가지 꿈을 꾸며 승리하라’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주문에 설득력이 실리는 것은 저자의 인생 궤적이 나목을 닮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용접공 출신 대학교수’다. 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후배를 구타하고, 무기정학을 당하고,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며 끝없이 방황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남은 건 불안과 불평뿐이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한 발전소에 취직했지만 변한 건 없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 변곡점을 만든 게 나력이었다. 저자는 “세상에 나 혼자 내던져진 듯한 외로움과 그렇더라도 홀로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는 중압감을 등에 업고 나는 맨몸으로 뛰어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저자는 1년을 죽기살기로 공부해 한양대 교육공학과에 입학했다. 밤에는 야간경비 일을 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액 장학금을 탔다.

‘나력’을 밑천 삼은 그의 인생은 이어 석사과정과 미국 유학, 대기업 입사로 이어진다. 지금 그는 모교의 대학교수다.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은 나를 포장했던 온갖 껍데기를 과감하게 벗어던질 때 완성할 수 있다”는 저자의 발언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