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심슨 인형·향수병·귀이개…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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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미학
박영택 지음│마음산책│352쪽│1만4000원
박영택 지음│마음산책│352쪽│1만4000원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의 책상은 이런저런 소소한 물건들 차지다. 박 교수에게 그 물건들의 존재는 실용적인 쓰임새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폐적인’ 물건들에 눈을 맞춰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고, 귀를 쫑긋 기울여 물건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상대한다. 그게 그가 하는 예술의 한 모습이다. “일상의 도구적 관계에 저당잡힌 사물을 자유롭게 풀어내서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예술 행위”이며 “그렇게 비로소 의미있는 사물이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수집미학》은 박영택 교수가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에 보내는 그윽한 교감의 시선이다. 미술평론가, 대학교수, 생활인으로서 그의 취향과 심미안을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상대역인 물건들은 아주 다양하다. 심슨 캐릭터 인형부터 일상에서 흔히 쓰는 귀이개, 손톱깎이, 향수병에 와불이나 꼭두 같은 작품까지 71개를 헤아린다.
박 교수는 유독 청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청색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다. 남성용 불가리 향수도 청색이다. 그는 이 불가리 향수에서 바다를 본다. “윤명숙의 제주 바다와 권부무의 파란 잉크색과도 같은 바다, 배병우와 최병관, 그 외 여러 작가의 바다 사진” 속 “시리게 파란, 비현실적인 바다”다. 그리고는 “더 이상 현실적인 육체로 밀고 나갈 수 없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자멸하는, 잠시 죽어보는” 휴식을 꿈꾼다. 또 ‘오로지 파란색 때문에 제자의 것을 빼앗은’ 블루오일로 두통에 시달리는 자신의 몸을 이완하고, 잉크병 모양의 파란색 연필깎이를 앞에 두고서는 ‘늘 뭉툭하고 한없이 닳는 자신을 매 순간 긴장시킨다.’
그에게 조금 특별한 것은 만화 캐릭터인 심슨 인형과 이스트팩 배낭이다. 그는 심슨 인형을 보며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입이 돌출돼 토끼라고 놀림받던 자신처럼, 입과 눈이 돌출된 심슨 인형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낀다. 이스트팩 배낭은 그의 육신 같은 물건이다. 일상은 물론 먼 여행을 떠날 때도 이스트팩 배낭을 메고, “뭐든지 다 받아주는 이 가방의 포용력과 실용성”을 만끽한다. 부드러운 갈색 서류가방도 아끼는 물건이다. 그는 “납작하고 폭이 좁고 가벼우며 매혹적인 갈색으로 물든” 이 손때 묻은 가방에서 “추리고 추려 본질만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 같은 서늘한 깨우침”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수집미학》은 박영택 교수가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에 보내는 그윽한 교감의 시선이다. 미술평론가, 대학교수, 생활인으로서 그의 취향과 심미안을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상대역인 물건들은 아주 다양하다. 심슨 캐릭터 인형부터 일상에서 흔히 쓰는 귀이개, 손톱깎이, 향수병에 와불이나 꼭두 같은 작품까지 71개를 헤아린다.
박 교수는 유독 청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청색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다. 남성용 불가리 향수도 청색이다. 그는 이 불가리 향수에서 바다를 본다. “윤명숙의 제주 바다와 권부무의 파란 잉크색과도 같은 바다, 배병우와 최병관, 그 외 여러 작가의 바다 사진” 속 “시리게 파란, 비현실적인 바다”다. 그리고는 “더 이상 현실적인 육체로 밀고 나갈 수 없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자멸하는, 잠시 죽어보는” 휴식을 꿈꾼다. 또 ‘오로지 파란색 때문에 제자의 것을 빼앗은’ 블루오일로 두통에 시달리는 자신의 몸을 이완하고, 잉크병 모양의 파란색 연필깎이를 앞에 두고서는 ‘늘 뭉툭하고 한없이 닳는 자신을 매 순간 긴장시킨다.’
그에게 조금 특별한 것은 만화 캐릭터인 심슨 인형과 이스트팩 배낭이다. 그는 심슨 인형을 보며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입이 돌출돼 토끼라고 놀림받던 자신처럼, 입과 눈이 돌출된 심슨 인형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낀다. 이스트팩 배낭은 그의 육신 같은 물건이다. 일상은 물론 먼 여행을 떠날 때도 이스트팩 배낭을 메고, “뭐든지 다 받아주는 이 가방의 포용력과 실용성”을 만끽한다. 부드러운 갈색 서류가방도 아끼는 물건이다. 그는 “납작하고 폭이 좁고 가벼우며 매혹적인 갈색으로 물든” 이 손때 묻은 가방에서 “추리고 추려 본질만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 같은 서늘한 깨우침”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