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그룹 호(號)의 출범은 실무 전문가인 회장을 맞아들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박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실무를 총괄해왔다. 박 회장이 명실상부한 그룹의 ‘얼굴’이 되면서 두산의 변화와 성장 페달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의 구심력 커질 듯

두산그룹에서는 박용만 그룹회장 승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룹의 굵직굵직한 업무를 직접 챙기면서 실무를 책임져왔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학과 교수 출신인 박용현 전 회장은 2007년부터 두산건설 회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해왔으나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용만 회장은 1982년 두산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해 두산음료, 동양맥주, (주)두산 전략기획본부,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두루 거치면서 밑바닥부터 실무를 익혔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은 계열사의 경영 현황까지 꼼꼼히 파악하고 있다”며 “그룹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 구심력이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 경영인 같은 오너 회장

박 회장은 두산그룹에서 전문 경영인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1995년 말부터 시작된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한 주인공이 박 회장이다. OB맥주 등 주력 사업과 그룹사옥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체질을 바꿨다. 또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2006년 영국 미스이밥콕(두산밥콕) △2007년 미국 밥캣 △2009년 체코 스코다파워 등 1998년부터 총 17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두산은 맥주 등 주로 소비재를 취급하던 그룹에서 글로벌 인프라지원사업(ISB)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두산그룹은 1998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5조2000억원으로 8배가량 커졌다. 해외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12%에서 62%로 확대됐다. 70%가량 되던 소비재 매출 비율은 10%로 줄어들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산업재 그룹으로 우뚝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재경영 강화하나

박용만 회장하면 떠오르는 것은 ‘인재경영’이다. 사람의 성장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키고, 다시 사업의 성장이 사람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두산그룹의 ‘2G(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 전략을 수립한 주역이다.

박 회장은 직원 선발과 육성을 직접 챙겨왔다. 매년 참석하는 대학 기업설명회는 항상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젊은 청년에게 두산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이미지 광고의 카피 역시 박 회장이 만들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젊은이들과 적극 소통하는 대표적인 재계 인사”라며 “그룹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팀플레이 리더십이 한층 강조될 것”으로 내다봤다.

두산그룹은 1896년 8월1일 서울 종로구 종로4가에 세워진 ‘박승직상점’으로부터 출발했다. 올해로 창립 116년을 맞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는 (주)두산이며 재계 순위는 2010년 자산기준 11위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