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 딱지 떼도 은행대출 '그림의 떡'
지난해까지 나이스신용평가정보 기준 신용등급이 8등급이었던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신평사가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신용등급이 2단계나 올라갔다는 내용이었다. 급전이 필요했던 그는 소액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거래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해당 은행이 자체적으로 매기는 12단계의 등급 분류에서는 오히려 등급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

김씨는 은행 창구 직원으로부터 “신용평가사의 등급보다는 내부 기준이 중요하다”며 “주거래 이력을 높이거나 급여이체, 주택담보 등 거래 실적을 더 늘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게다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3개사에서 받은 점도 은행 대출 거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위원회의 ‘서민금융 기반강화 종합대책’에 따라 지난해 10월 신용평가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개인의 신용등급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말 700만명을 웃돌던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1년 만에 500만명대로 줄었다. 그러나 등급이 높아졌다고 해서 종전보다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거나, 대출금리가 내려갈지는 의문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1일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개선된 평가요소 및 비중으로 개인신용을 재평가한 결과 12월 말 기준 신용등급이 7~10등급에 해당하는 저신용자는 전체의 14.8%인 595만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1월 637만명보다 42만명 줄어든 것이다. 주의등급인 7등급은 236만명에서 225만명으로, 8등급은 216만명에서 200만명으로 각각 감소했다. 위험등급으로 분류되는 9등급과 10등급은 각각 14만명, 1만명가량 줄었다. 나이스 관계자는 “지난해 채무불이행 신규 발생 추이나 연체고객 전이 추이 등을 볼 때 개인의 신용이 갑자기 좋아졌다기보다는 평가 방식이 바뀐 결과”라고 말했다.

개인신용등급이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된 것은 나이스를 비롯한 신용평가사들이 정부 방침에 따라 ‘불리한 요소’는 평가 항목에서 없애거나 비중을 줄이고 ‘유리한 요소’의 비중을 늘렸기 때문이다. 나이스는 ‘현재 연체보유 여부 및 과거 채무상환이력’은 종전 총배점의 49.0%에서 40.3%로 평가비중을 줄였다. ‘신용조회건수’는 아예 평가 항목에서 없앴다. 대신 △대출금 상환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전기요금 납부 등 우량정보 반영 비중은 늘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5~6등급 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여전히 꺼리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평가사가 제공하는 개인신용등급을 대출 업무 등에 활용하지만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은행 거래 실적 및 기여도 등 더 많은 평가 기준이 있어 등급이 높아진 고객들에게 선뜻 대출을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