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째 가업승계를 이어온 스웨덴 발렌베리가(家)에는 대대로 ‘자녀와 일요일 아침마다 산책하기’, ‘손자에게 지혜 가르치기’ 등의 교육지침이 내려오고 있다. 후손들에게 기업정신을 전수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한국을 찾은 마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삼성의 경영 승계에 대해 “경험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경영 승계에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필수 요소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덴마크 최대 기업 댄포스를 이끄는 클라우젠 가문의 요르겐 클라우젠 회장도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비전과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흥망사를 돌아보면 2세 경영이 실패한 경우는 대부분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을 때가 많았다. 진로 쌍용 해태 등은 대부분 경영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30대에 총수에 올라 독단·방만 경영,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 기업가정신 부족 등으로 몰락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공병호경영연구소의 공병호소장은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기업흥망사’에서 이들 기업의 몰락 요인으로 오너의 자질과 경영능력 부족, 시장을 읽어내는 통찰력 부재, 무리한 사업다각화 등을 꼽았다.

소주업체인 진로가 창업 80년 만에 법정관리를 거쳐 매각된 것은 2세인 장진호 전 회장의 방만경영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6세 때인 1988년 그룹 총수에 오른 그는 이듬해 종합유통사업에 뛰어든 이후 주택건설 전자 기계 금융 레저 등으로 사업 영역을 급속히 확장했다. 취임 당시 5개였던 계열사 수를 1990년대 초 30개 가까이로 늘렸다. 1995년 막대한 초기 투자가 요구되는 맥주시장에 진출할 때까지 확장경영으로 일관하다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졌고 외환위기로 결정타를 맞았다.

한때 재계 순위 7위에 올랐던 쌍용그룹은 창업자인 선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31세의 젊은 나이로 그룹을 물려받은 김석원 전 회장이 무리하게 자동차에 욕심(1986년 동아자동차 인수)을 낸 데다 정치의 길로 외도하면서 와해됐다. 해태는 박병규 초대 회장의 아들 박건배 전 회장이 1977년 33세 때 제과·음료·상사 등 3개사를 맡은 뒤 전자 건설 유통업 등에 진출했다 부도를 맞았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병철, 정주영 등 창업 1세대들은 기업 활동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애국심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일류 기업의 성장기틀을 마련했다”며 “하지만 경제 성장 이후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2,3세들은 국익 창출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보다는 단기 경영실적에 치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