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소재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린 지난 3월30일 오전. 금융위원회는 회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청년·저소득층 생활안정을 위한 서민금융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청와대와 사전에 조율한 내용이었다.

금융위는 보도자료에서 ‘청년·대학생 고금리 채무에 대한 전환대출’을 첫 번째 지원책으로 제시했다. 연 20% 이상 고금리로 대부업체 등에서 돈을 빌린 청년층(대학생 및 졸업 3년 이내)이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타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시행시기는 6월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난 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제87차 라디오 연설’에서 “정부는 5월부터는 청년층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할 계획”이라며 “은행권 기부금 500억원을 보증재원으로 해서, 기존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낮은 금리로 전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은 5월부터 전환대출이 본격 시행되는 것으로 이해됐다.

같은 정책인데도 시행시기가 왜 다른 것일까. 금융위는 이에 대해 “지원의 주체인 은행들이 전산시스템을 일부 바꿔야 한다”며 “일부 은행은 5월부터, 나머지 은행들은 6월부터 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어떤 곳이 5월부터 지원할 수 있나”라는 질문엔 “은행연합회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학비를 대기 위해 고금리로 돈을 빌린 청년들의 빚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책당국자의 발표는 물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네 번씩이나 언론에 홍보하면서도 정작 정책의 시행시기조차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대책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1박2일 동안 5개 도시를 돌며 서민금융 현장을 찾았을 때 처음 나왔다. 그 뒤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다시 언급했고, 지난주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이어 대통령 라디오 연설까지 무려 네 차례나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다지만 과도한 재탕 삼탕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홍보에만 치중하는 사이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린 약 16만명의 대학생(금융감독원 작년 6월 조사)들이 은행을 찾았다가 헛걸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둘러 발표부터 하기 전에 짜임새 있는 서민금융 정책이 나와야 한다.

류시훈 금융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