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D램 반도체 업체인 일본 엘피다메모리 인수전에 지난달 30일 5곳이 의향서를 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SK하이닉스, 일본 도시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주요 반도체 기업 외에 중동 국부펀드와 정보기술(IT)관련 기업의 사모펀드 등 해외 펀드 2곳의 참여다.

과거 경영권 인수전은 기업이나 개인이 직접 투자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전형이었다. 요즘엔 엘피다 인수전처럼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딜에도 펀드를 통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뛰어들고 있다.

기업의 글로벌 성장전략 모델이 펀드를 활용해 진화하고 있다. 토종 PEF(사모펀드)와 손잡고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들과 성공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올해로 출범 7년째를 맞는 국내 PEF 시장엔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올 2월 말 기준 국내 PEF 등록회사 수는 총 189개, 출자약정액은 33조원에 이른다. 2005년 말 당시 15개사에 출자약정액이 5조원가량이었던 것에 비하면 6배 이상 급성장했다.

국내 기업들의 FDI(외국인직접투자)는 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현지 법인이나 공장 설립 등을 통해 주도해 왔다.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한 만큼 해외 기업 인수보다는 합작투자, 일부 지분 인수 방식을 선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우량기업들이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오면서 경영권 인수를 겨냥한 바이아웃 펀드 등 PEF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PEF는 투자가를 비공개로 모집해 자산 운용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투자하는 자금으로, 기업 인수와 지분 참여 형식으로 나뉜다. 글로벌 사업을 벌일 때 기동력, 전문성, 네트워킹에서 강점을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구자규 KTB투자증권 PE본부장 상무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PEF를 활용해 성장해 왔다”며 “국내 PEF의 투자 대상도 국내 제조업체 중심에서 벗어나 미국 중국 등 해외 기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GM, IBM, 듀폰 등 글로벌 기업이 운영하는 투자자산 중 PEF 투자 비중은 10~15%에 이른다. 노키아는 벤처 자회사 노키아 그로스 파트너스를 통해 직접 펀드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PEF 시장의 확대로 국내 기업들이 FI(재무적투자자) 위주의 참여에서 기업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SI(전략적 투자자) 역할을 하는 기회도 늘고 있다. 이희우 IDG벤처스코리아 대표는 “PEF 본연의 임무가 경영권을 확보해 기업가치를 재설계하는 것인 만큼 사업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이 SI로 적극 나서야 한다”며 “해외 기업 중에서는 SI로서 계열사 벤처캐피털이나 인수·합병(M&A) 사업부를 갖고 있다가 사업 성과를 축적해 PEF를 운용하는 독자회사로 성장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