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부터 준법지원인을 둬야 하는 회사의 범위가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회사에서 1조원 이상 상장회사로 축소됐다. 정부는 준법지원인 제도를 자산 1조원 이상인 상장사에 우선 적용한 뒤 2014년부터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사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3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하는 회사는 당초 287개(전체 상장사의 17%)에서 170개(10%)로 줄어들었다.

○‘옥상옥’ 지적에 또 후퇴

준법지원인은 회사 임직원들이 정해진 법과 규정을 준수하고 회사경영을 적정하게 수행하는지 감시해 이사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중대형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감사나 감사위원회 등 자체 준법질서 감시기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옥상옥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준법지원인 제도 적용대상을 자산 3000억원 이상 상장사로 정했다. 하지만 적용대상을 ‘2조원 이상 상장사’로 주장하는 재계의 반발이 잇따르자 지난 1월 말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사’로 기준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그러다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자산 5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 상장사는 2013년까지 적용을 유보키로 한발 더 물러선 것이다.

준법지원인 제도 적용범위에 대해선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및 지식경제부와 조율과정에서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데 대상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준법지원인 적용 대상기업 기준을 1조원 이상 상장기업으로 최종 합의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법무부 “다양한 인센티브 검토”

준법지원인 제도 탄생배경은 로스쿨출신 변호사들의 일자리 확보 차원에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도입취지와 달리 돌아가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준법지원인으로 따로 뽑아쓰기보다는 기존 법무팀 소속 직원을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올해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9명 새로 뽑았다는 S그룹의 한 관계자는 “준법지원인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 대신 기존 법무팀 직원으로 하여금 다른 일을 겸해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별도로 제재를 받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법무부는 준법지원인제도 도입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지원을 검토 중이다. 예컨대 준법지원인을 두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를 감경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련 공문을 이미 재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처벌 감면방안도 연구 중이다. 건설 환경 등 행정법규를 위반했을 경우 벌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 준법지원인 제도


기업의 윤리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변호사나 법대 교수, 기업 법무부서 경력자 등 법률전문가를 ‘준법지원인’으로 의무적으로 두게 하는 제도다. 현재 금융회사에 있는 준법감시인과 역할이 비슷하다. 의무사항이지만 도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벌칙규정은 없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