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험 결과가 조작된 제네릭(복제약)에 나간 요양급여비용만큼 손해배상하라”고 주장하며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낸 86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건보 측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고법 항소심으로 올라온 소송 건수는 모두 43건, 이 중 4일까지 항소심 판결이 난 8건 중 7건에서 건보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1심의 건보 승률 약 56%(24건 승소)와 비교하면 건보가 수세에 몰린 양상이다.

이날 서울고법 민사20부(부장판사 장석조)는 건보가 제약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3건에 대해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중 1건은 1심에서 건보가 일부 승소한 사건이다. 이날 판결로 항소심 판결 8건 중 1심에서 건보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가 2심에서 결론이 뒤바뀌어 건보 패소한 건만 4건이 됐다.

소송의 시작은 2006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원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제네릭의 허가를 취소하고, 생동성 시험을 한 기관과 제약회사를 상대로 해당 제네릭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용만큼 손해배상하게 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약품을 유통하는 약국, 병원 등이 건보에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아 제약사에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9년 건보는 해당 제약사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 등에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주요 쟁점은 ‘해당 제네릭에 대해 지출한 요양급여비용만큼 건보가 피해를 입었나’ 하는 점이었다. 건보가 실제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제약사에 손해배상 의무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건보 패소 판결한 항소심 재판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건보 지출액에 대해 제약사가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20부는 올 2월, 민사21부는 지난해 11월 “해당 제네릭이 아니더라도 건보는 다른 대체 의약품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을 지출했을 것이므로 건보에는 손해가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민사5부는 지난해 11월 건보의 손해와 제약사의 이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요양기관을 통해 제약사에 요양급여를 지급하는 계약까지 무효는 아니다”며 제약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항소심에서 유일하게 지난 1월 건보 일부 승소 판결한 서울고법 민사1부는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해당 제네릭과 다른 의약품을 동등하게 볼 수 없다”며 “건보는 지출하지 않았을 요양급여비용을 해당 제네릭 때문에 추가 지출하게 된 것이므로 손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한편 건보 승·패소 판결과 관계없이 현재까지 항소심 재판부들은 “시험 단계 데이터 조작까지 제약사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는 판단을 내려온 상태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1심에서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렸던 사안으로, 항소심에서 일단 정리가 된 다음 대법원 판결로 확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생동성 시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제네릭(복제의약품)이 원의약품(오리지널)과 동등한 약효가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임상시험. 이 시험을 통해 제네릭이 기준 의약품과 성분, 함량뿐 아니라 효능, 용법, 용량까지 같다는 점을 입증해야 제조·판매가 가능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