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본격적인 조림을 시작한 지 50년이다. 1949년 식목일이 제정됐지만 전쟁과 복구로 10년이 흐른 1962년에야 ‘치산녹화 10년 계획’이 수립됐다. 산림기본계획(1973~1997년) 사업을 마칠 때까지 전국에 심어진 나무는 108억그루. 그렇게 2010년 기준으로 전 국토의 63.7%가 산림면적이 됐다. OECD 국가 중 국토면적 대비 산림면적 순위 4위다. 벨기에 일본 스웨덴이 우리 앞 순위에 있을 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은 조림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일찍이(1982년) 평가했다.

일제시대 소설가 김동인은 소설 ‘붉은 산’을 썼다. 산은 전부 민둥산이었고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서 있지 않았다. 그런 한국이 세계적 순위를 다투는 산림자원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분명 한국인이 이룬 기적의 하나다. 붉은 산들은 과연 어떻게 짙푸른 산으로 바뀌었나. 나무를 많이 심고 잘 가꾸었다는 답변으로는 불충분하다. 빠르고 성공적인 공업화, 즉 소득증가가 붉은 산을 푸른 산으로 바꾸어 갔다. 땔감으로 잘려나가던 숲과 나무를 살린 것은 석탄을 연탄으로 가공해 판매한 석탄가공 기술이었다. 이제는 연탄도 아닌 ‘석유와 가스’를 쓰고 있다. 가난의 상징 화전민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제조업에 의해 뒷받침되는, 다시 말해 공업화된 농업은 좁은 농지에서 더 많은 소출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한국인은 토지의 구속에서 풀려났다.

아직 북한은 붉은 산이다. 아니 벌거벗은 산이 더 많아지고 있다. 북한은 제조업이 붕괴된 나라다. 필요한 비료와 농약과 농기구를 못 만든다. 열악한 공업적 기반 탓에 농업 생산성은 하락일로다. 굶는 사람이 늘어가자 오로지 농사 짓는 땅을 늘리고 사람을 더 투입하는 농법을 쓰고 있다. 산을 깎아 옥수수 밭을 만드는 소위 주체 농법이다. 북한의 붉은 산들은 그 한심한 결과다. 환경파괴의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산림녹화=반(反)공업화’ ‘개발=환경파괴’의 이분법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적절한 공업 발달이 산림녹화의 절대조건이다. 선진국의 강물은 깨끗하지만 후진국의 강물이 깨끗할 수 없다. 한국의 울창한 숲은 경제개발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것이 아니라 경제개발과 성장의 아름다운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