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조직 구조와 형태는 17세기 유럽에서 식민지 영토 확장 및 시장 개척을 위해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운영되던 수탁회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왕과 귀족으로부터 출자받아 선단을 구성하고, 저비용 국가에서 제품을 구입하거나 생산해 보다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국가에서 판매함으로써 크게 번창했다.


본부 조직이 여러 제품 및 지역 사업부를 통제하는 현대 글로벌 조직과 비슷한 모습은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세계를 무대로 야심찬 성장 전략을 추진했던 제너럴모터스(GM)와 듀폰(DuPont) 같은 기업이 그 선두에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바람직한 조직 구조와 형태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하지만 다양한 고민 속에서도 글로벌 조직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가 하나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지 시장의 수요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글로벌 조직으로서 보유한 공동의 자산과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중요해졌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제품, 지역, 기능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복잡한 형태의 매트릭스 조직을 채택,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한 구조가 아닌 역량의 문제

글로벌 조직의 유형은 당연히 글로벌 사업 운영과 해외시장 진출 전략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시장에 수출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본사 조직에 해외사업부를 두거나 진출시장 현지에 영업사무소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제품 및 지역 사업부를 통해 진출시장에 부합하는 영업, 마케팅 활동까지 직접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글로벌 조직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즈음 많은 기업이 고려하는 조직 형태가 매트릭스 조직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에 따라 관리해야 할 제품과 지역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이 두 차원을 동시에 전략적으로 고려할 조직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매트릭스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이중 보고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과 지역을 두 축으로 하는 매트릭스 조직에서 해외 자회사의 제품 관리자는 제품사업부 책임자와 지역사업부 책임자 양쪽으로 동시에 보고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나이키(Nike)가 지역 및 제품을 주요 축으로 하는 매트릭스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발 의류 등 주요 제품은 기본 규격이 아시아, 북미 등 지역마다 다를 뿐 아니라 각 지역별 고객 취향도 다양하다. 따라서 나이키에서는 제품 관리자로 하여금 본부 차원에서 마련한 신제품 출시 계획을 보다 구체화하도록 한 뒤 지역 관리자가 각 지역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일정한 변화를 줄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조직 관리의 복잡함과 어려움에도 매트릭스 조직을 선호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지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중 보고체계의 매트릭스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선도 기업들은 매트릭스 조직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협력적인 관리자를 선별하고 공동의 성과 목표를 부여하며, 지역과 제품 등 모든 차원에서의 실적을 두루 인정해주는 다차원적 경영계획과 회계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직 구조뿐만 아니라 관리 프로세스와 인사정책, 나아가 조직 내 문화와 규범까지 빈틈없이 연계하고 있다. 글로벌 조직은 인력, 관리 프로세스, 조직 문화 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돼야 발휘될 수 있는 조직의 ‘총체적 역량’인 것이다.

○본부 조직을 통한 시너지 창출

글로벌 조직이 세계 곳곳에 뻗어나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지 조직 각각이 자율적인 사업단위 수준에서 운영되는 데 그친다면 조직 공통의 자산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글로벌 조직 특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글로벌 조직으로서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본부 조직과 해외 자회사 간에 적절한 권한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 형태는 본부 조직에 어느 정도로 권한이 집중되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진출시장별 특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글로벌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에는 본부 조직에 권한이 집중된 형태가 적합할 수 있다. 듀폰의 본부 조직은 해외 자회사의 전략 수립에 적극 참여하고, 해외 자회사 간 전략적 추진 과제가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중앙집권적 형태의 장점은 빠른 의사결정과 더불어 정책 및 프로세스의 전 세계적 일관성에 있다.

반면 보험업처럼 상품이 각 나라의 정책이나 규제 등의 영향에 크게 노출되므로 현지 특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금융업과 같은 분야의 기업들은 자회사에 더 많은 권한을 나눠준다. 현지 경영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는 분권형 조직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조직인 언스트앤영의 경우도 아시아·태평양, 일본, 미주, 유럽·중동·인도·아프리카 등 세계를 네 지역으로 나눠 지역본부를 운영한다.

지역본부는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 초기에는 진출 지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현지 사업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고 현지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하는 사업가적 역할로 시작한다. 이후 현지 사업의 안정화 단계에서는 글로벌 조직 공통의 관리 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사업이나 경영 활동이 지역별로 중복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가 아시아 시장 개발 단계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에 각각 법인을 설립, 인사 및 전자상거래 업무를 나눠 책임지는 ‘전담조직’으로 활용한 것이 좋은 예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협력과 조정

오늘날 글로벌 조직의 가장 고도화된 형태는 각 현지 조직들이 전 세계에 걸쳐 적절히 분업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하나의 몸처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계된 네트워크다. 글로벌 조직의 협력 및 조정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

이제는 전 네트워크에 걸쳐 혁신 프로그램이나 지적 재산의 공유까지 이뤄지고 있다. 과거 본부 통제가 강하던 시기에는 해외 자회사의 상품 개발 아이디어가 무시되기 쉬웠다.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 KFC의 일본 지사에서 경쟁사인 맥도날드가 치킨너겟 제품을 출시하기 한참 전에 비슷한 제품을 시도했지만, 본사의 반대로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반면 3M은 제품 개발 기능이 없는 판매 중심의 현지 사업장에서도 제품 개조나 포장, 마케팅 등의 영역에서 혁신의 여지가 많다고 보고 현지에 보다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 왔다.

하지만 전 세계로 뻗어나간 많은 현지 조직들로부터 협력을 유도하는 데 있어 본부 조직의 기능과 같은 공식적인 조정 메커니즘만으로는 조직 간 장벽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선도 기업들은 조직 간 협력 강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첫째, 가치관적 통합 측면에서 강력하고도 명확한 비전 등을 공유함으로써 일체감을 조성하고 구성원의 협력을 유도한다. 둘째, 현지 자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능 관리자들이 지역 단위로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장(場)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다음으로, 공동의 협의나 의사결정을 위해 지역 담당 중역이나 사업 담당 중역들이 정기적으로 회합하는 운영회를 가동한다.

또 유니레버의 사례와 같이 국제적 경력 경로를 설정, 조직 구성원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정재상 <언스트앤영 한영 이사>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고려대 경영학 석사, 미 오하이오주립대 MBA
△한솔CSN 인사팀, 머서코리아 부장컨설턴트,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리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