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카페] 회의 때마다 뭔가 회의가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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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엔 '핏대'…정작 중요한 안건은 대충·후다닥
만일 당신이 수첩과 TV를 구입하기 위해 쇼핑을 한다면, 어느 물건을 살 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는가. 당연히 더 비싼 TV 구매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파킨슨의 법칙’으로 유명한 노스코트 파킨슨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수첩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첩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이 좋은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구점에 가서 수첩을 고를 때는 이것저것 비교해 보느라 의외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반면 값비싼 TV의 경우에는 LCD(액정표시장치)와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이 있고, 2D(평면)와 3D(입체)가 있는데 이런 기술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특장점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 이런 차이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장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결국 매장 한쪽에서 진행되는 할인행사에 나온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별것 아닌 결정을 내리는 데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은 그 중대성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시간을 들인다는 사실을 파킨슨 교수는 ‘사소함의 역설(Law of Triviality)’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확인하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을 배워서 알고 난 뒤에 결정하는 번거로움은 꺼리는 심리적 속성을 가리킨다. 이는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같은 집단의사결정에서도 나타난다. 파킨슨 교수는 기업에서 회의 안건을 다루는 데 들이는 시간은 그 안건에 소요되는 비용의 크기와 반비례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파킨슨의 법칙’이란 책에서 어느 대기업의 임원회의를 예로 들었다. 회장과 열 명의 이사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두 개의 안건이 다뤄졌다. 하나는 1억파운드의 비용을 들이는 새 공장 건설, 다른 하나는 3500파운드를 들이는 자전거 거치대 설치 문제였다. 먼저 공장 신축문제가 다뤄졌다. 10명의 이사들 가운데 4명은 그 공장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전혀 몰랐으며, 다른 3명은 왜 그런 공장을 지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회장과 나머지 3명의 임원 가운데에서도 공장 건설에 드는 비용이 얼마 정도가 적당한지를 아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결국 회의에서는 내용을 아는 두 사람만이 의견을 교환했고, 공장 신축 문제는 15분 만에 결정됐다.
다음으로 다뤄진 ‘본부 건물 앞에 자전거 거치대 설치하기’ 안건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불과 3500파운드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 문제였지만, 이 안건을 두고 임원들은 한 시간이 넘게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다음 회의로 결정을 보류하고 말았다. 임원들은 저마다 자전거라는 게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침을 튀겨댔던 것이다.
많은 기업에서 이런 상황을 볼 수 있다. 잘 아는 사소한 안건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만 새롭게 벌어지는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 창피를 당할까 두렵기도 하고, 모르는 일에 잘못 말려들면 나중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사소함의 역설’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회의 안건에 따라 회의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한정된 시간에 반드시 결정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길게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개인별 발언시간도 제한을 해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중요한 사안의 경우에는 토론할 시간을 충분히 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석하는 사람들이 내용을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회의 시작 전에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담당 직원들이 수시로 도움을 줘야 한다. 때로는 ‘고의적인 비관론자’를 참여시켜 가능한 리스크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의 역설’.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수첩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첩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이 좋은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구점에 가서 수첩을 고를 때는 이것저것 비교해 보느라 의외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반면 값비싼 TV의 경우에는 LCD(액정표시장치)와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이 있고, 2D(평면)와 3D(입체)가 있는데 이런 기술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특장점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 이런 차이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장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결국 매장 한쪽에서 진행되는 할인행사에 나온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파킨슨의 법칙’이란 책에서 어느 대기업의 임원회의를 예로 들었다. 회장과 열 명의 이사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두 개의 안건이 다뤄졌다. 하나는 1억파운드의 비용을 들이는 새 공장 건설, 다른 하나는 3500파운드를 들이는 자전거 거치대 설치 문제였다. 먼저 공장 신축문제가 다뤄졌다. 10명의 이사들 가운데 4명은 그 공장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전혀 몰랐으며, 다른 3명은 왜 그런 공장을 지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회장과 나머지 3명의 임원 가운데에서도 공장 건설에 드는 비용이 얼마 정도가 적당한지를 아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결국 회의에서는 내용을 아는 두 사람만이 의견을 교환했고, 공장 신축 문제는 15분 만에 결정됐다.
다음으로 다뤄진 ‘본부 건물 앞에 자전거 거치대 설치하기’ 안건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불과 3500파운드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 문제였지만, 이 안건을 두고 임원들은 한 시간이 넘게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다음 회의로 결정을 보류하고 말았다. 임원들은 저마다 자전거라는 게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침을 튀겨댔던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사소함의 역설’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회의 안건에 따라 회의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한정된 시간에 반드시 결정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길게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개인별 발언시간도 제한을 해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중요한 사안의 경우에는 토론할 시간을 충분히 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석하는 사람들이 내용을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회의 시작 전에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담당 직원들이 수시로 도움을 줘야 한다. 때로는 ‘고의적인 비관론자’를 참여시켜 가능한 리스크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의 역설’.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