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4400만弗짜리 만년 꼴찌가 어떻게 2억7000만弗 팀을 꺾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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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신념·과학적 관리가 기적 연출…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지침서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 / 조나 케리 지음 / 김익현 옮김 / 이상 / 328쪽 / 1만4000원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 / 조나 케리 지음 / 김익현 옮김 / 이상 / 328쪽 / 1만4000원
2008년 9월9일 오후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 펜웨이 파크. 8회 말 2아웃 상황에서 제이슨 베이의 2점 홈런이 터지자 구장은 4만여 보스턴 관중의 함성 섞인 ‘스위트 캐롤라인’ 노랫소리에 파묻혔다. 레드삭스의 4-3 역전.
패색이 짙어진 탬파베이 레이스의 9회 초 첫 타석에 존 댄슨이 섰다. 트리플A에서 그날 불러 올려져 게임 시작 30분 전에야 합류할 수 있었던 왼손타자다. 마운드에는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꼽히는 조너선 파펠본이 올랐다. 2-3 풀카운트. 공 다섯 개를 흘려보냈던 존슨이 반사적으로 여섯 번째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중간 불펜 뒤쪽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솔로홈런을 만들었다.
4-4 동점. 그 한 번의 스윙이 기적을 만들었다. 레이스는 그날 레드삭스를 물리치고 창단 후 첫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세를 몰아 디비전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일축하고 다시 맞붙은 레드삭스를 또 넘으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을 안았다. 2010년에도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 시즌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역전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와일드 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탬파베이 레이스는 무슨 힘으로 그 기적을 만들었을까. 2008년 연봉 총액 4400만달러로 아메리칸리그 꼴찌, 메이저리그에서는 꼴찌에서 두 번째 팀이 어떻게 1억3000만달러의 레드삭스와 2억7000만달러의 양키스를 무릎 꿇릴 수 있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는 메이저리그 꼴찌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유쾌한 반란을 다룬 책이다. 1998년 시즌부터 2007년까지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지구 꼴찌를 도맡아왔던 레이스의 화려한 변신 과정을 그렸다. 문제투성이 기업의 성공 과정과 독특한 리더십을 다룬 경영소설로도 읽힌다.
메이저리그 동부지구는 호랑이 굴이나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버티고 있다. 지구 우승은 커녕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조차 하늘에 별따기다.
저자는 레이스가 2004년 뉴욕 월스트리트 출신 스튜어트 스턴버그를 구단주로 맞아들이고, 골드만삭스 출신 맷 실버맨과 앤드루 프리드먼에 이어 조 매든 감독이 합류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턴버그 팀은 어떤 구단과도 다른 방식으로 팀을 운영했다.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데이터와 통계를 우선했다. 선수를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카우터의 감에 의존하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투자 기법을 활용해 변화와 성장에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2%’에 주목했다. 하나를 사는 동시에 다른 하나를 파는 금융거래인 차익거래 방식으로 접근해 성과를 올렸다. 특히 선수의 미래가치를 중시한 것은 유명하다. 레이스의 약점인 수비력을 보강하기 위해 출루율보다 수비능력에 관한 지표에 주목한 것도 잘 알려졌다. 자연히 재능은 뛰어나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선수를 싸게 데려올 수 있었다.
저자는 덕장으로서의 조 매든 감독에게도 시선을 맞춘다. 매든 감독은 선수나 구단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작은 공이 튀어나오는 맞춤형 피칭머신도 그가 제일 먼저 도입했다.
매든 감독은 철저한 데이터 야구를 추구한다. 그만큼 선수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는 감독도 없다. 그는 관습적인 지혜에 안주하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완전히 반대되는 쪽으로 일을 하는 편이다. 전통의 불문율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수용한다. 2008년 8월17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가 유명하다.
메이저리그에는 몇 가지 징크스가 있다. 홈에서 첫 번째 아웃당하지 마라. 쿠바 출신으로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호세 칸세코와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지 마라. 어떤 일이 있더라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9회에 승부를 결판낼 수 있는 상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등이다. 그런데 매든 감독은 7-2로 앞선 이날 경기 9회 말 만루 상황에서 고의사구 사인을 낸다. 다음 타자가 안타를 칠 확률이 낮다는 데에 승부수를 띄운 것. 매든 감독은 최고의 구원투수가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메이저리그의 불문율도 무시한다. 가장 훌륭한 구원투수는 시합의 끝 마무리가 아니라 가장 긴급한 상황에 투입해 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든 감독의 소통 방식에도 주목한다. 매든 감독에게 모든 소통은 ‘긍정적 강화’이기도 하다. 칭찬이나 금전적 보상 등 만족감을 주는 자극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는 것이다. 선수를 발굴할 때 약점이 아닌 강점을 보고 기다려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