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하지 마라.” “형제하고도 안 된다.” 동업 얘기다. 동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나쁘다는 뜻이다. 자칫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돈은 물론 사람까지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 김병태 CWT코리아 회장(55)은 생각이 좀 다르다. 그는 “인생은 동업으로 푸는 것”이라며 동업을 부추긴다. “스펙이 달린다면 동업자의 능력으로 메우면 된다”면서.

《세상의 모든 것과 동업하라》는 김 회장의 동업 경험담이다. 그는 ‘동업의 달인’이다. 6개의 사업을 동업으로 성공시켰다. 요즘도 한 달에 평균 1건 이상 동업 제의를 받는다고 한다.

그의 청년 시절은 그저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소질을 보여 문예반장도 했다. 그러나 낙농업의 미래를 밝게 본 부친이 낙농과에 원서를 넣었다.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최루가스 속에 대학시절을 보냈다. 취직을 못해 대학원 시험을 치르고는 군대에 갔다. ROTC로 임관해 삼청교육대 교관 생활도 했다. 제대 후 대학원 미생물학 실험실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다.

김홍신 씨 소설 《인간시장》을 보고 출판사를 차린 뒤 170쪽짜리 지도를 만들었다. 쪽박을 차는가 싶었는데 50쇄를 찍는 베스트셀러를 만들며 기사회생했다. 그게 고교 동창과 손잡은 첫 번째 동업이다. 선배 소개로 여행사에 들어가 7년 만에 대표가 됐고, 송경애 대표와의 동업으로 기업출장 전문 여행사 BT&I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매형과 동업해 부산 증권거래소 빌딩의 소유주가 됐고,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와 손잡고 클래식 음악 전문 매장 풍월당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한 여성 기업인, 고교 문예반 친구 셋이서 동업해 비즈니스 호텔 체인인 애플트리호텔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대학 동창과 손잡고 바이오벤처 바이오리더스의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동업자라면 가족, 친구, 선후배를 가리지 않는 그는 “가능하면 이성과 동업하라”고 권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의리 있고 헝그리 정신도 강하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많고 남들과 잘 어울려야 하며, 망하더라도 사회를 위해 뭔가 했다는 자부심을 내세울 수 있는 명분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장은 돈이 안될지라도 재미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그가 들려주는 성공 동업원칙 중 하나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