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다우 1000p 등락논쟁 실체 '비커와 욕조 모형'
오랜만에 미국 고용문제가 글로벌 증시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 문제는 미 경제의 지속적인 회복과 3차 양적완화(QE3) 관련 정책 시행,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대한 평가, 글로벌 증시흐름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미국의 고용 사정을 보면 지난해 성장률은 1.7%에 그쳤지만 실업률은 9.4%에서 8.5%로 크게 떨어졌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아이세건 시한, 크리스티나 패터슨)은 2014년까지 미국의 성장률은 2%대의 완만한 수준에 그치겠지만 실업률은 내년 중반에는 6%대, 2014년 말까지는 5%대로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추세적인 것이라면 성장률과 실업률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두 가지 사실이 깨지는 획기적 변화라고 판단된다. 먼저 ‘실업률을 1%포인트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 성장해야 한다’는 ‘오쿤의 법칙(Okun’s rule)’이 흐트러진다. 지난해의 경우 실업률은 거의 1%포인트 개선됐지만 성장률은 1%대 후반에 그쳤다.

미국의 경기 회복이 성장은 되더라도 고용이 뒤따르지 않는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이라는 선입견도 무너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이후 나타나고 있는 실업률 하락 현상이 위기극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것이냐, 추세적인 것이냐를 놓고 미국 학계와 금융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추세적이라면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 왔던 통화정책 기조가 전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월가를 중심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비커 모형’을 살펴보자. 고용 사정이 개선돼 물이 비커에 반이 찼다는 사실을 놓고 “벌써 반이 차 앞으로 닥칠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시각과 “이제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물론 버냉키 의장은 후자의 입장이다.

‘욕조 모형(bathtub model)’도 주목을 끌고 있다. 경기침체기와 회복기 초반에는 ‘배출구’로 비유되는 취업이 막힌 상태에서 ‘주입구’로 비유되는 실업자가 크게 증가해 욕조에 물이 쉽게 찬다. 하지만 회복기가 어느 단계만 지나면 실업자가 늘지 않는 상태에서 취업자가 증가해 배출구가 조금만 열리더라도 물이 빨리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이 모형의 핵심이다.

완만한 경기회복 속에 실업률 하락현상이 일시적이냐, 추세적이냐에 대한 판단은 Fed의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아주 중요하다. 추세적이라면 일단 QE3는 물 건너간다. 더 나아가 금리인상 등을 통해 조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일시적이라면 지금까지 추진해온 경기부양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실제로 실업률 하락이 일시적인데 추세적인 것으로 착각해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경우다. 일시적이라면 지금의 경기회복과 고용시장 개선이 ‘그린 슛(green shoot)’ 단계라는 의미다. 위기 극복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률과 실업률을 각각 잠재성장률과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골든 골(golden goal)’을 달성하는 일이다.

골든 골을 달성하기 이전에 실업률 하락에 대한 판단을 잘못해 금리인상 등과 같은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가는 어렵게 마련된 그린 슛이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돼버리고, 다우존스지수도 일시에 1000포인트 이상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공황 실수’, 또는 1930년대 당시 Fed 의장의 이름을 딴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가 이런 사례다.

지금은 4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비상시를 맞아 금리를 대폭 내리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 유동성을 워낙 많이 공급해 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기 이전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실업률 하락 등과 같은 착시현상이 언제든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전략도 그 성격과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고 버냉키 의장이 역설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골든 골을 앞당기기 위해 ‘본대’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착시현상과 같은 ‘곁가지’를 자르는 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착시현상을 착각해 국민경제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인상 등과 같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 본대를 잘라 돌이킬 수 없는 대공황에 빠지게 한 게 에클스의 실수였다.

이미 버냉키 의장은 에클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해 9월 발표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나 최근 들어 강조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없는 양적완화’ 정책이 그것이다. 이 정책들은 전체적인 유동성은 늘리지 않는 가운데 설비투자에 직결되는 장기금리를 낮춰 금융과 실물 간 연계를 강화하고, 경기회복과 고용창출을 늘려가는 게 주 목적이다.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신뢰가 계속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