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의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과 관련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과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이 모두 9일 미흡한 현장대응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고위 간부가 옷을 벗는다고 해결된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조 청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무성의가 이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축소와 거짓말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끼쳐드린데 대해 깊히 자책하며 진심어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은 '통화가 수초에 불과했다' '1분 20초다' '현장에 바로 35명의 경찰을 투입했다'며 수차례 거짓말을 반복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고 현장 CCTV도 범인 검거후엔 확인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경찰이 밝힌 전체 녹취록을 보면 피해자의 신고전화는 112센터 접수자와 통화한 1분20초 이후에도 6분16초 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

녹취록에는 피해자가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저 지금 성폭행 당하고 있거든요"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가기 전" "아저씨 빨리요, 빨리요"라고 현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전화를 받은 112센터 신고접수자는 피해자에게 "누가, 누가 그러는 거예요?" "누가 어떻게 알아요?" "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어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12 경찰, 성폭행 당한다는데 계속 주소만 물었던 까닭
특히 1분20초가 경과한 시점부터 피해자가 "악, 악, 악"이라고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이후로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112센터 접수자는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의미도 없는 질문만을 던졌다.

피해자가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어둠 속에서 납치돼 감금된 긴박한 상황에서 범인의 집주소를 알리가 만무하다. 녹취록에는 5분44초가 경과한 이후 112센터 근무자가 동료 근무자에게 "아는 사람인데…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부부싸움 같은데…"라고 말하는 내용도 담겼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던진 '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냐' '누가 그러는거냐' '주소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은 모두 가해자가 면식범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애초에 단순 부부싸움 신고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범죄장소가 1층인지, 대문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등 단서가 될만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경찰의 범죄 대응능력과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민들은 거듭된 경찰의 축소 은폐의혹에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내며 "보도를 접할수록 분노가 치민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피해자가 그 통화가 생전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경찰이 아닌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텐데 경찰에게 전화를 한건 자신을 구조하러 올것이라 믿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경찰의 안이한 대처를 비난했다.

지난해 도지사가 관할구역 119에 전화를 해도 믿지 않았던 상황만 봐도 얼마나 119나 112에 장난전화를 얼마나 빈번한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경찰은 만에 하나 있을수 있는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하지만 지금도 하루에 수차례 경찰서에 '○○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어제만해도 40대 남성이 서울시교육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순찰차 7대와 탐지견을 포함한 특공대폭발물처리반(EOD)을 출동시켜 교육청 직원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낸 뒤 1시간여 동안 건물전체를 수색했지만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를 찾지 못해 허위신고로 결론내렸다.

이시각에 공교롭게도 진짜 폭발물관련 강력범죄가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단 경찰이나 소방서에는 실제 위급한 상황에만 전화를 걸어 요청해야하는 기본적인 약속을 국민들이 먼저 지켜야 한다.

오죽했으면 119 소방대원들은 하루에도 수백통씩 걸려오는 잠긴 현관문 열어달라 배터리 나간 자동차 시동 걸어달라는 요청에는 출동하지 않도록 규정을 강화하기까지 했겠는가.

수원 여성 토막살인후 경찰관계자의 거듭된 사과에도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것은 경찰의 격무를 몰라서가 아니다. 죽기전 경찰을 향해 구조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구조도 받지 못하다 테이프에 묶여 지옥같은 밤을 보내다 죽은 죄없는 20대. 시신마저 끔찍하게 훼손된 피해자가 더이상 대한민국에 나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경찰힘으로도 불가피하게 막을 수 없는 범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

네티즌들은 한경 SNS 댓글을 통해 "이번 수원 사건은 나테해진 경찰공무원의 현실이다" "112나 119에 장난전화 거는데 대한 벌금이 적어도 1000만원은 되야 한다" "장난전화 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또 신고할때 과장되게 신고해서 실제가보면 맥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경찰이 잘못했다" "신고했으니 오겠지 하며 죽기전 마지막 1초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희생자를 위해 관련자 전원은 사퇴를 해야한다"며 관계자들의 부실한 대응을 꼬집었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