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명운을 걸고 사투를 벌였던 4·11 총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는 올 12월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란 성격 때문에 여느 총선 때보다 치열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막판까지 여야 후보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대혼전이 이어지면서 각당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선거가 막을 내린 무대엔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이 엇갈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여야는 쉴 틈도 없이 대선 채비에 나설 것이다. 국민의 모든 관심과 시선도 대선주자들의 행보에 맞춰질 게 뻔하다. 4·11 총선은 그렇게 쉽게 잊혀질 게다. 그러나 이번 총선이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정치권이 꼭 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반성문 쓰기다. 승패를 떠나 이번 총선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져 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부끄러운 '네거티브 선거 완결판'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할 건 여야의 선거전략이다. 이번 선거는 완벽한 네거티브 선거였다. 시종일관 상호 비방과 폭로로 반사이익을 얻는 데 여야가 따로 없었다.

야당은 ‘정권심판론’과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을 물고 늘어졌고, 여당은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저질 막말 등 상대방의 헛발질을 파고들었다. 선거 직전에 잠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정책 이슈를 놓고 대결하는 듯하더니, 이내 정책과 공약은 사라졌다. 여야가 이념과 정체성을 떠나 표만 구걸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지다 보니 정책적 차별성이 없어진 탓이다.

두 번째는 공천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공천 개혁을 외쳤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없었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문제 후보’가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설 막말 후보, 논문 표절 후보, 성희롱 전력 후보 등이 공천을 받았다. 표 계산만 한 정치공학에 매몰된 공천에서 기인한 것임은 물론이다.

고질적인 지역구도도 여전했다. TK(대구·경북)지역에선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완승했다. 호남에선 민주당이 대부분 의석을 휩쓸었다. 부산 경남에서 당선된 야당 후보는 극소수였다.

재외국민투표가 실패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실시한 재외국민선거의 실투표율은 2.5%에 그쳤다. 293억원의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말로만 공천개혁…재외투표 '낭비'

우리가 ‘4·11총선 반성문’을 확실히 쓰고 넘어가야 하는 건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에서 또다시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반성 없이 넘어갔다가 4년 뒤에도 부실 공천, 네거티브 선거, 지역구도 재현, 하나마나 한 재외국민투표를 반복한다면 우리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후진적 정치문화에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구태 정치가 이어질 것이다. 19대 국회라고 ‘해머 국회’ ‘최루탄 국회’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만약 정치권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땐 국민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 반성하고 변하도록 강제하는 게 주권이고, 국민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국민들은 총선 이후에도 정치권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문제 정치인은 끝까지 심판하고, 각당의 정책을 냉정히 평가하고, 지역주의에 휘둘리지 않도록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도 짜증나는 정치권에 더이상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국민들의 참된 주권 행사는 총선 이후 지금부터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차병석 정치부 차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