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넘긴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이 시화집으로 영글었다. 민병문 헤럴드경제 고문(73)이 시를 쓰고, 대한체육회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72)이 사진을 붙인 《새벽에 만난 달》이다.

언론인과 기업인으로서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민 고문과 박 회장은 서울대 상대 59학번 동기생이다. 은퇴를 앞두고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던 민 고문이 박 회장에게 시에 어울릴 사진을 부탁했다. 박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진 마니아다. 직접 찍은 야생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할 정도다. 시화집에 실린 사진마다 시의 운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민 고문의 시는 노년의 일상과 세월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젊은날의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난 노신사의 시선이 자유롭다.

“너를 내안에 가둬두고 싶다/ 너의 자유는 내안에서 만개하리/ 간절한 마음으로 꺾은 한 송이 꽃,/(…)/ 너의 자유는 내 품이 아닌가봐/ 그렇다면 시원스레 풀어주마/너를 내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 내가 도리어 자유를 만끽한다.” (‘동행’)

찬란했던 젊은날을 회상하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얹혀져 멀리 와버린 자신을 위로한다.

“슬퍼말라, 겨울 인생들아,/ 그대들 화려한 젊은 날에/ 많이 오만하지 않았던가.// 이제 엷은 추억을 남긴 채/ 소멸의 서러움에 젖어도/ 이미 겪은 무수한 풍상이/ 보석이 되어 위로한다.”(‘위로’)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아직도 시퍼런 청춘이고 날카로운 언론인임을 감추지 못한다.

“바람아, 아 바람아/ 우리 함께 광야로 가자/ 길 없는 길 만들어 가면/ 거기 빛과 소금 있어라.”(‘바람아, 아 바람아’)

‘뚝심이 박회장’이란 시가 눈에 띈다. 민 고문이 곁에서 바라본 박 회장 이야기다. 대기업 그룹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 사진 마니아에 중매쟁이로서 엄격하면서도 털털한 박 회장의 모습을 그려 웃음짓게 만든다.

민 고문은 이번 시화집에 대해 “마음은 문학의 광장에 가있으면서 생업으로 신문사 밥을 먹고 마침내 자유인 신분으로 문학에 본격 참여하는 순간을 자축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민 고문은 196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경제부장·논설위원실장·심의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9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으로 옮겨 헤럴드경제 주필을 지냈다.

박 회장은 발문에서 “민 시인은 상과대학을 가는 바람에 인생 항로가 달라졌지만 고희를 넘겨 원래 영역으로 되돌아온 셈”이라며 “한마디로 문학의 원석이나 다름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또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피사체 뒤에 숨은 진실이 늘 알고 싶었다”며 “그런 점에서 언론이 추구하는 점과 닮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