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은 특유의 잔잔함이 살아 있는 일본 영화다. 그러나 줄곧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인 중년 여성이 연고도 없는 헬싱키에 조그마한 식당을 내고, 자신만의 음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카모메 식당’ 속에 그려진 핀란드는 한없이 여유롭기만 하다.

터키항공을 타고 이스탄불을 경유, 3시간가량 더 지나자 비행기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닿는다. ‘출구’ ‘헬싱키’라고 쓰인 친절한 한글 안내판이 인상적이다.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공항은 그리 북적거리지 않는다. 이곳의 여유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4월 초, 핀란드도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나고는 있지만 한국으로 치면 아직 한겨울 날씨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뿜어 나오는 입김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의 말소리 가운데 간간이 ‘휘바(잘했어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산타클로스와 함께 ‘휘바휘바’

차를 타고 20여분쯤 달려 헬싱키 중앙역으로 이동한다. 헬싱키역에서 ‘산타의 고장’ 로바니에미까지는 기차로 11시간가량. ‘산타클로스 특급열차(santa claus express)’로 이름 붙은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야 하지만 기차 안을 오가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흔들리는 기차 속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하니 요람에 누운 듯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하다. 식당칸을 이용하면 간단한 식사와 군것질도 해결할 수 있다.

밤새 북으로 달린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핀란드 인구 500만명 가운데 6만명이 살고 있다는 로바니에미. 이곳 사람들 중 40%는 관광업에 종사한다. 작년 한 해 통계로 하룻밤 이상 머물다 간 관광객만 50만명이라고 하니 산타 할아버지의 인기를 가늠할 만하다.

로바니에미역에서 차로 10여분, 산타마을이 눈에 보인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풍경이 산타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산타마을 내에는 산타클로스의 집무실, 산타마을 중앙우체국 등이 있다. 29~49유로를 내면 집무실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산타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우체국에서 산타마을 소인이 찍힌 엽서도 직접 보낼 수 있다. 그날그날 넣은 엽서를 바로 발송하는 우체통과 1년치를 모아 크리스마스에 맞춰 발송하는 우체통으로 구분돼 있다.

산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루돌프(순록)가 끄는 썰매다. 근처 농장에서는 순록 먹이 주기, 썰매 타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순록은 식용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소고기보다 값이 비싸다. 스테이크로도 먹지만 주로 으깬 감자에 잘게 썬 순록고기와 크랜베리를 곁들인다. 순록고기는 기름기가 적은 소고기 맛과 비슷하다.

로바니에미에는 북극 지방을 연구하는 과학센터이자 박물관인 악티쿰이 있다. 유럽 최북단 지역인 라플란드(Lapland)와 북극 지방의 자연, 에스키모들의 삶과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보여주는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유리 천장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조명을 대신한다.

한겨울 로바니에미에서는 운이 좋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고, 6~8월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아주 추운 겨울도 아니고, 날이 맑지도 않아 오로라를 볼 순 없지만 길게 뻗은 침엽수, 노을에 빛나는 하얀 눈, 반짝이는 호수가 어우러진 야경을 보고 있으니 그 서운함이 씻긴다.


○디자인 도시 헬싱키

헬싱키로 돌아가는 주간열차에서 창밖을 보고 있자니 풍경 속 시간이 멈춘 듯하다.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숲과 호수, 곳곳에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가 장관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하얀 풍경과 차장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 지붕들에서 북유럽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다시 도착한 헬싱키 중앙역의 낮은 밤에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각종 버스와 트램이 지나고 중앙우체국, 대형 쇼핑센터 등 편의시설들이 한데 모여 있는 시내 중심가. 핀란드 내 다른 중소도시에 비하면 북적이는 편이지만 서울역을 머릿속에 그려 보니 꽤나 한가롭게 느껴진다.

헬싱키 시내 루터란대성당, 원로원광장을 지나 우스펜스키사원 쪽으로 빠져 나오면 바다내음 가득한 항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서울의 광장시장 같은 상설시장이 열린다. 일명 ‘마켓플레이스(마켓광장)’다.

핀란드 남부지방을 둘러싸는 발트해는 염분 농도가 낮아 연어 송어 청어 등 다양한 어종이 많이 잡힌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끼니마다 생선을 거의 빼놓지 않는다. 주로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날것에 염장하는 형태가 우리나라 젓갈과 매우 흡사하다.

항구 한쪽에는 ‘올드마켓’이 자리잡고 있다. 핀란드인들이 퇴근길 마트에서 장을 보듯 들르는 곳이다. 식재료와 간단한 먹거리 등을 주로 판매한다. 하루 장사를 위해 물건을 진열하고 정리하는 주인,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여는 손님, 어느 누구의 손길도 조급하지 않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6번 트램을 타고 30여분 가니 노선 가장자리께에 있는 ‘아라비아 팩토리’에 닿는다. 2012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헬싱키는 도시 곳곳에 디자인 구역을 지정해 놓고 있는데 아라비아 지역도 그중 하나다.

아라비아 팩토리 내에는 유리 브랜드 ‘이딸라’, 도자기 브랜드 ‘아라비아 핀란드’ 등 다양한 그릇 및 인테리어 소품을 만날 수 있는 아울렛이 즐비하다. 가격은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 여행 팁 - 4월까지 눈…90일간 비자 없이 여행

핀란드는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4월까지 눈이 내린다. 핀란드어가 따로 있으나 영어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90일간 비자 없이 여행 할 수 있다.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까지는 VR(핀란드 철도www.vr.fi)로 여행하는데 유레일(EurailTravel.com/kr) 글로벌 패스를 이용하면 된다. 유레일 글로벌 패스는 23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하는 국가 1~2곳, 3~6곳을 조합한 유레일 패스도 있다.

매주 수·토요일 컴포트 클래스를 운항하는 터키항공(turkishairlines.com)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이코노미석 요금에 20만~30만원을 추가하면 비즈니스 클래스에 가까운 서비스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내년부터는 매일 운항할 예정인데 이스탄불에서 10시간 이상 대기하는 고객은 터키항공이 제공하는 시티투어나 호텔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서비스를 선택하면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02)3789-7054~6

헬싱키=백은지 기자 beeeu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