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의원에 배우만 쏙 빠져…정치권선 아직도 딴따라로 보나…"
“이번 총선 비례대표에 배우는 한 명도 배정하지 않았더군요. 아직도 배우를 우습게 보는 거죠.”

연극 ‘아버지’(13~29일, 동숭아트센터)에서 주인공 장재민 역으로 열연 중인 원로배우 이순재 씨(77·사진). 조곤조곤 작품 얘기를 들려주던 그의 목소리가 선거 대목에서 갑자기 커졌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국회의원(서울 중랑갑)으로 당선돼 부대변인까지 지낸 그는 “적어도 2~3명은 배정할 줄 알았는데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수준이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했던 배우 최란 씨(서울문화예술협회 이사장·52)마저 심사에서 탈락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물론 배우들에게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는 공인이기 때문에 말에서도 공신력을 가져야 해요. 지난 광우병 소동처럼 불확실한 정보를 사실인 양 말해선 곤란합니다.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언론에 오르내리니 스타가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데, 확실한 팩트로만 얘기해야 해요.”

배우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을 보수·진보로 양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배우가 보수관객만 좋아하고 진보관객은 싫어하고 그렇지는 않아요. 보수나 진보나 다 우리 관객이잖아요. 그래서 배우는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연극 ‘아버지’는 1949년 미국에서 초연된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판으로 옮긴 작품이다. 아버지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들 세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모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1979년, 2000년 공연 때에도 주인공인 아버지 역을 맡았다.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일까.

“100점 만점에 50점도 안 되는 아버지였어요. 가사나 자녀 양육에 관심 가질 조건이 아니었죠. 요즘 젊은 친구들이야 작품 하나 끝나면 재충전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우리 땐 상상도 못했습니다.”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아버지를 연기한 그는 요즘 세태를 어떻게 볼까. “평등사회로 가기 때문에 아버지 역할이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가족의 기둥은 늘 아버지예요. 우리 땐 통장은 우리가 쥐고 있었어요. 월급 나오면 외상값 갚을 거 빼고 쓸 돈만 탁 내놨다고. 지금은 남자들이 부인한테 꼼짝 못하던데, 결혼하거든 남편 기 좀 살려주세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