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 글씨 한글이냐, 한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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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 글씨 및 글씨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17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한자 표기를 주장하는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과 한글 표기를 주장하는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가 각각 주제발표를 하고, 각계 인사 9명이 토론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검토해 광화문 현판 제작에 참고할 계획이다.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은 “광화문은 완전히 본래의 형태대로 짓는다는 뜻의 복원”이라며 “편액도 본래대로 한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이사장은 “광화문은 베이징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의 의미보다 더 고차원의 홍익인간 정신이 깃든 철학과 사상이 내재된 명칭”이라며 “한글로 써 놓고는 그 뜻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광화문은 몇몇 서예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고종 때 광화문을 복원할 당시에도 명서가가 있었지만 그들의 글씨를 택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1968년부터 40여년 동안 걸려 있던 한글현판을 떼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흐릿한 한자현판 사진을 일본에서 구해 디지털 복제한 뒤 ‘쌍구모본’ 방식으로 먹칠해서 달았다”며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진을 보고 만든 이 현판은 제대로 원형을 복원한 것이 아닌 일종의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지금 서 있는 광화문은 오늘날 사람이 지은 오늘날 건축이어서 오늘날 시대정신과 흐름을 담아 오늘날의 글자로 문패를 다는 것이 더 좋고 옳다”며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살려서 쓰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꼭 해야 할 시대 사명”이라고 말했다.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경복궁의 부속물인 광화문이 새로 지어진 건물이므로 새 글씨를 달자는 주장은 광화문을 밖에서만 바라볼 때 생기는 판단미스”라며 “현판을 한글로 달자는 주장 역시 ‘갓 쓰고 구두 신자’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손 위원은 “지금의 글씨가 조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오류가 많다”며 “역사적인 글씨를 디자인 마인드로 접근해 바꾼다는 것은 몰(沒) 역사적”이라고 말했다. 또 경복궁 건설을 책임진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와 관련, “기록을 보면 내궐의 휘호는 모두 문신이 썼고, 대문은 무관의 몫이었다”며 “글씨의 역사성이 조형성보다 엄중하다”고 말했다.
김종택 한글학회장은 “어떤 형태로든 원형이 남아 있어야 복원이 가능한데 광화문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다”며 “광화문은 복원이 아니라 중건”이라고 강조했다. 임태영의 글씨와 관련해서는 “그 시대 19세기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라며 “여러 차례 중건된 광화문 현판에서 조금이라도 역사성 있는 원형을 찾는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광화문은 21세기에 경복궁 중창·보수와 함께 중건된 21세기 문화재로서 당당한 시대의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며 “거기에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체 현판을 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고 말했다.
전봉희 서울대 교수는 “광화문이 과거와 현재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현판에 쓰일 글씨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국가 상징로의 초점인 광화문이 갖는 장소적 의미는 현대에 새롭게 부가된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여타의 궐문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며 “중간에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도 현판은 새로 달아야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광화문은 수도 서울과 우리나라의 현재를 알려주는 정식의 표지와 같은 것이어서 광화문의 이마에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이름이 걸려야 한다”며 “새롭게 만든 한글 현판을 중앙의 정 위치에 달고, 과거의 광화문 현판은 그 아래층이나 후면의 경복궁을 향한 면에 달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황동열 중양대 교수는 “광화문 현판은 ‘지금 여기’의 ‘우리’ 한글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문자는 항시 변화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채택하면 가장 지능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또 “광화문 현판은 한문이나 한글의 차원보다는 이미 세계어로 각광 받고 있는 한민족 역량의 크기 만큼이나,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국가이미지라는 차원에서 ‘지금과 여기’ 그리고 ‘우리’의 한글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훈 한양대 교수는 “이런 논쟁자체가 관광의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현판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정립하자는 의미에서 타당하다”며 “관광의 관점에서 보자면 관광객에게 원래의 객관적 고유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또 “처음의 현판모습과 가깝게 보여줌으로써 원래의 광화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자의 의미를 통해 광화문이라는 글자의 스토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이날 공청회에서는 한자 표기를 주장하는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과 한글 표기를 주장하는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가 각각 주제발표를 하고, 각계 인사 9명이 토론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검토해 광화문 현판 제작에 참고할 계획이다.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은 “광화문은 완전히 본래의 형태대로 짓는다는 뜻의 복원”이라며 “편액도 본래대로 한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이사장은 “광화문은 베이징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의 의미보다 더 고차원의 홍익인간 정신이 깃든 철학과 사상이 내재된 명칭”이라며 “한글로 써 놓고는 그 뜻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광화문은 몇몇 서예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고종 때 광화문을 복원할 당시에도 명서가가 있었지만 그들의 글씨를 택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1968년부터 40여년 동안 걸려 있던 한글현판을 떼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흐릿한 한자현판 사진을 일본에서 구해 디지털 복제한 뒤 ‘쌍구모본’ 방식으로 먹칠해서 달았다”며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진을 보고 만든 이 현판은 제대로 원형을 복원한 것이 아닌 일종의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지금 서 있는 광화문은 오늘날 사람이 지은 오늘날 건축이어서 오늘날 시대정신과 흐름을 담아 오늘날의 글자로 문패를 다는 것이 더 좋고 옳다”며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살려서 쓰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꼭 해야 할 시대 사명”이라고 말했다.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경복궁의 부속물인 광화문이 새로 지어진 건물이므로 새 글씨를 달자는 주장은 광화문을 밖에서만 바라볼 때 생기는 판단미스”라며 “현판을 한글로 달자는 주장 역시 ‘갓 쓰고 구두 신자’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손 위원은 “지금의 글씨가 조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오류가 많다”며 “역사적인 글씨를 디자인 마인드로 접근해 바꾼다는 것은 몰(沒) 역사적”이라고 말했다. 또 경복궁 건설을 책임진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와 관련, “기록을 보면 내궐의 휘호는 모두 문신이 썼고, 대문은 무관의 몫이었다”며 “글씨의 역사성이 조형성보다 엄중하다”고 말했다.
김종택 한글학회장은 “어떤 형태로든 원형이 남아 있어야 복원이 가능한데 광화문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다”며 “광화문은 복원이 아니라 중건”이라고 강조했다. 임태영의 글씨와 관련해서는 “그 시대 19세기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라며 “여러 차례 중건된 광화문 현판에서 조금이라도 역사성 있는 원형을 찾는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광화문은 21세기에 경복궁 중창·보수와 함께 중건된 21세기 문화재로서 당당한 시대의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며 “거기에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체 현판을 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고 말했다.
전봉희 서울대 교수는 “광화문이 과거와 현재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현판에 쓰일 글씨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국가 상징로의 초점인 광화문이 갖는 장소적 의미는 현대에 새롭게 부가된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여타의 궐문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며 “중간에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도 현판은 새로 달아야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광화문은 수도 서울과 우리나라의 현재를 알려주는 정식의 표지와 같은 것이어서 광화문의 이마에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이름이 걸려야 한다”며 “새롭게 만든 한글 현판을 중앙의 정 위치에 달고, 과거의 광화문 현판은 그 아래층이나 후면의 경복궁을 향한 면에 달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황동열 중양대 교수는 “광화문 현판은 ‘지금 여기’의 ‘우리’ 한글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문자는 항시 변화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채택하면 가장 지능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또 “광화문 현판은 한문이나 한글의 차원보다는 이미 세계어로 각광 받고 있는 한민족 역량의 크기 만큼이나,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국가이미지라는 차원에서 ‘지금과 여기’ 그리고 ‘우리’의 한글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훈 한양대 교수는 “이런 논쟁자체가 관광의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현판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정립하자는 의미에서 타당하다”며 “관광의 관점에서 보자면 관광객에게 원래의 객관적 고유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또 “처음의 현판모습과 가깝게 보여줌으로써 원래의 광화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자의 의미를 통해 광화문이라는 글자의 스토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