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소중한 사진들, 컴퓨터 속에선 안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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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화재·습기로 망가지기 쉬운 책·음반
디지털 방식으로 보관해 편해졌지만
호환성 낮고 파일 손상도 부지기수
화재·습기로 망가지기 쉬운 책·음반
디지털 방식으로 보관해 편해졌지만
호환성 낮고 파일 손상도 부지기수
“불이 났다든가 하는 위험한 순간에는 언제나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찾게 마련이지. 이건 거의 본능이야. 이를테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 아이를 안을 것이고, 보석에 빠진 여자는 보석 상자 있는 데로 내닫는 법이지.”
코난 도일의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 셜록 홈즈가 한 말이다. 이 작품에서 홈즈는 보헤미아 국왕으로부터 그의 연인이었던 프리마돈나 아이린 애들러가 갖고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되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홈즈는 고민 끝에 목사 분장을 하고 스스로 만든 소동에 휩쓸려 애들러 집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이후 홈즈는 화재 상황을 만들어 애들러가 사진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내지만, 목사가 홈즈라는 사실을 눈치챈 애들러는 다른 사진만을 남겨두고 해외로 떠난다.
◆보관·관리 힘든 아날로그 자료들
사진이나 음반, 책 등은 모으는 것보다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진짜 일인 경우가 많다. 애들러처럼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할 경우 오랜 기간 모아왔던 자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기원전 295년 처음 만들어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였던 80만권에 이르는 장서들을 저장하고 있었지만, 4세기께 화재로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선비들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책을 거둬 태우고 그들을 파묻어버렸던 ‘분서갱유’ 사건도 있었다.
굳이 역사적 사건까지 꺼낼 필요 없이 이사갈 때마다 묶음으로 내다 버리고 나중에 아쉬워하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집안 어딘가 박스 안에 보관했던 사진첩들이 통째로 사라져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기억 너머로 보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종이 등 매체에 기록된 ‘아날로그’식 자료는 대개 눈에 보이는 실체로 부피와 질량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많은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실제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습기 탓에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애들러처럼 불의의 사고를 막을 대책도 세워야 한다.
◆디지털 자료
디지털 방식으로 자료를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편의성은 분명 증대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찍어왔던 사진의 원본 파일을 2.5인치 외장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모두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수만장이 넘는 양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공간 안에 모두 몰아넣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음반이나 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등교 때마다 그날 들을 음반을 몇 개 골라 가방에 넣곤 했다. 이 같은 습관은 HDD가 내장된 아이팟을 쓰게 되면서 사라졌다. 수십GB(기가바이트) 용량의 HDD는 기자가 갖고 있는 음반을 모두 mp3 파일 등 음원으로 바꿔 저장하기에 충분했다. 책이나 신문은 아직까지도 종이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자책이나 태블릿PC가 빠른 속도로 기존 매체를 잠식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디지털로 만들어진 자료들을 보관하는 일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활용은 디지털이 분명 편하지만 보관에 있어선 아날로그 방식이 더 안전한 경우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호환성’이다. 몇 년 전 집안 청소를 하면서 20년 전에 사용하던 플로피디스크를 찾았다. 3.5인치도 아닌 5.25인치 디스크였다. 어떤 파일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지만 5.25인치 디스크를 꽂을 수 있는 디스크드라이브를 구할 길이 없었다. 구했다 하더라도 파일들이 현재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도스(DOS) 시절 즐겨하던 게임을 지금 컴퓨터로 하려면 준 전문가 수준의 컴퓨터 지식이 필요한 판이다. 10년 전에 백업을 목적으로 사진을 저장해둔 CD는 고이 모셔뒀음에도 손상돼 파일을 열어볼 수 없었다. 불과 10~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자료가 제대로 보관됐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갑작스레 번개가 치면서 컴퓨터가 고장난 적이 있다. 모니터와 메인보드, 하드디스크가 순식간에 타버렸다. 몇 년 동안 찍은 사진 파일이 들어 있었지만 말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천재지변’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역설적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날로그 자료 덕분이었다. 상당수 사진이 필름을 스캔한 것이어서 책장 한켠에 잔뜩 쌓아뒀던 필름을 다시 꺼내 스캔 작업을 거쳐 파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코난 도일의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 셜록 홈즈가 한 말이다. 이 작품에서 홈즈는 보헤미아 국왕으로부터 그의 연인이었던 프리마돈나 아이린 애들러가 갖고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되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홈즈는 고민 끝에 목사 분장을 하고 스스로 만든 소동에 휩쓸려 애들러 집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이후 홈즈는 화재 상황을 만들어 애들러가 사진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내지만, 목사가 홈즈라는 사실을 눈치챈 애들러는 다른 사진만을 남겨두고 해외로 떠난다.
◆보관·관리 힘든 아날로그 자료들
사진이나 음반, 책 등은 모으는 것보다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진짜 일인 경우가 많다. 애들러처럼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할 경우 오랜 기간 모아왔던 자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기원전 295년 처음 만들어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였던 80만권에 이르는 장서들을 저장하고 있었지만, 4세기께 화재로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선비들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책을 거둬 태우고 그들을 파묻어버렸던 ‘분서갱유’ 사건도 있었다.
굳이 역사적 사건까지 꺼낼 필요 없이 이사갈 때마다 묶음으로 내다 버리고 나중에 아쉬워하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집안 어딘가 박스 안에 보관했던 사진첩들이 통째로 사라져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기억 너머로 보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종이 등 매체에 기록된 ‘아날로그’식 자료는 대개 눈에 보이는 실체로 부피와 질량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많은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실제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습기 탓에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애들러처럼 불의의 사고를 막을 대책도 세워야 한다.
◆디지털 자료
디지털 방식으로 자료를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편의성은 분명 증대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찍어왔던 사진의 원본 파일을 2.5인치 외장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모두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수만장이 넘는 양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공간 안에 모두 몰아넣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음반이나 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등교 때마다 그날 들을 음반을 몇 개 골라 가방에 넣곤 했다. 이 같은 습관은 HDD가 내장된 아이팟을 쓰게 되면서 사라졌다. 수십GB(기가바이트) 용량의 HDD는 기자가 갖고 있는 음반을 모두 mp3 파일 등 음원으로 바꿔 저장하기에 충분했다. 책이나 신문은 아직까지도 종이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자책이나 태블릿PC가 빠른 속도로 기존 매체를 잠식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디지털로 만들어진 자료들을 보관하는 일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활용은 디지털이 분명 편하지만 보관에 있어선 아날로그 방식이 더 안전한 경우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호환성’이다. 몇 년 전 집안 청소를 하면서 20년 전에 사용하던 플로피디스크를 찾았다. 3.5인치도 아닌 5.25인치 디스크였다. 어떤 파일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지만 5.25인치 디스크를 꽂을 수 있는 디스크드라이브를 구할 길이 없었다. 구했다 하더라도 파일들이 현재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도스(DOS) 시절 즐겨하던 게임을 지금 컴퓨터로 하려면 준 전문가 수준의 컴퓨터 지식이 필요한 판이다. 10년 전에 백업을 목적으로 사진을 저장해둔 CD는 고이 모셔뒀음에도 손상돼 파일을 열어볼 수 없었다. 불과 10~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자료가 제대로 보관됐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갑작스레 번개가 치면서 컴퓨터가 고장난 적이 있다. 모니터와 메인보드, 하드디스크가 순식간에 타버렸다. 몇 년 동안 찍은 사진 파일이 들어 있었지만 말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천재지변’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역설적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날로그 자료 덕분이었다. 상당수 사진이 필름을 스캔한 것이어서 책장 한켠에 잔뜩 쌓아뒀던 필름을 다시 꺼내 스캔 작업을 거쳐 파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