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은 김일성 100회 생일에 즈음한 일련의 4월 정치행사를 통해 당 제1비서로 올라서면서 당권(黨權)을 장악했다. 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돼 군권(軍權)도 틀어쥐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4개월 만에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는 신호다. 4월의 정치행사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열병식 대중연설과 야회(불꽃놀이)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정치행사 기간 동안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 통치를 통해 김정은 체제가 순탄하게 항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북한정권으로선 2012년은 특별한 해다. 김일성 100회 생일과 김정일 70회 생일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올해 강성대국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 했다. 이런 이유로 무모한 군사적 도발행동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3호’를 발사해 군사강국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새 정권 출범 초반부터 군사강국에 매달려 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적 행동은 분명 잘못된 선택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식량배급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미사일 발사로 외화를 낭비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번 ‘광명성 3호’의 ‘미사일 통치’로 2년치 식량을 135초 만에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이는 북한이 군사강국을 위해 미사일 발사에 얼마나 매달려 왔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또 북한 지도부가 인민의 정부를 자처하지만 먹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 됐다. 이런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적 문제’라는 립서비스를 반복하면서 주민들을 위로하는 척 기만해왔다.

어떤 의미에서 김정은 체제의 출범은 잘못된 과거를 단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김정은 당 제1비서는 4·15태양절 행사 열병식 기념사에서 ‘경제강국 건설의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외신은 김정은이 ‘자본주의 방식도 도입할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면서 “중국의 방법이든 러시아나 일본의 방법이든 사용 가능한 방법이 있으면 도입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금기시된 북한에서 김정은의 이와 같은 언급이 사실이라면 파격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행보도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신이 전한 내용은 중국의 ‘흑묘백묘론’을 연상하게 한다. 바로 새로운 김정은 체제는 강성대국의 마지막 보루인 경제강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낡은 사회주의 이념에 집착하기보다 자본주의제도를 도입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물론 김정은 당 제1비서가 당장 자본주의를 도입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개혁과 개방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개혁개방이 북한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김정은 당 제1비서가 유년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보고 배운 자본주의와 국제사회에 대한 경험은 유용한 자산일 수 있다.

구 소련이 붕괴된 것은 핵과 미사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면서 인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결국 국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역사를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 구 소련의 사례는 북한도 미사일과 핵에 의존하는 군사강국의 길이 아니라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강국의 길로 가는 것이 국가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김정은 당 제1비서는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역사적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개혁은 바로 산업화를 통해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며, 개방은 더 큰 시장을 지향하고 국제규범을 준수해 정상국가로 가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은 입으로만 개혁개방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이 뒤따르는 개혁개방을 단행해야 한다.

조영기 < 고려대 교수·북한학 bellkey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