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거의 해에 대기업들이 혼쭐이 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30개 대기업을 3000개의 기업으로 쪼개겠다고 공약(公約)했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청장년이 신망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대기업의 탐욕과 불공정 거래가 중소기업과 창업을 질식시키는 이 무법-파탄 경제구조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대기업을 공적(公敵)으로 간주한다. 이 당은 한나라당 시절 홍준표 대표가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이라는 방송인터뷰 질문에 “착취요!”라고 단번에 대답한 바 있다.

실상 한국의 대기업은 이런 대접을 받을 존재가 아닐 것이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은 그간 ‘대한민국의 성공’을 상징해왔다. 이들이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어 수출과 세수를 벌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정치가나 중소기업들이 더 많이 내놓으라고 요구할 건더기도 없을 것이다. 그런 대기업들이 이런 푸대접을 받는 것은 이들의 처신(處身)이 가져온 결과이니 하등 동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기업은 착취자’라는 승자(勝者) 부정의 사상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뒤엎는 국가 망조(亡兆)이므로 태산 같은 근심거리가 된다.

우리 대기업들은 왜 이런 신세가 됐는가. 그간 이들은 족벌경영, 탈세상속, 기타 불법, 불공정의 행태로 크게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이는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법과 상식으로 풀어야 할 사안(事案)별 규칙 위반의 문제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 실패는 아마 이들이 ‘시장경제를 지키는 전투’에 비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간 시장과 기업의 적들에게 용기 있게 정면전(正面戰)을 펼치는 대신 항상 뇌물을 주고 굴복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작년 강용석 의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기업을 비판하면 기업들이 그 재단에 기부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임을 폭로했다. 그간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좌파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에게 기부찬조하고 추파를 던지고 사외이사로 영입한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거대한 자원이 그 많은 반(反)시장 반체제 단체들을 살찌우고 촛불시위와 희망버스들을 동원하는 젖줄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 행태들은 바로 과거 블라디미르 레닌이 했다는 “자본주의자들은 그들의 목을 졸라 맬 밧줄을 우리에게 팔게 될 것”이라는 말 그 자체다.

미국이 보수이념의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보자. 1960년대 미국 36대 대통령인 민주당의 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를 표어로 내걸고 ‘빈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존슨 대통령 시절 정부에 시장경제는 ‘죽은 논제’가 되고 빈곤, 환경, 시장 규제를 다루는 관료와 기금이 넘쳐났다. 미국의 지적 세계는 늘어나는 좌파 싱크 탱크와 ‘신좌파(New Left)’들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70년대 들어 ‘신보수주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 등 활동적 보수지식인들이 기업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만약 기업이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을 원한다면 너희 스스로 지갑을 열어 시장과 기업에 봉사하는 지적 세력을 창출하라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주들이 이에 호응했다. 헤리티지 재단이 창설되고 1980년대 중반까지 카토(Cato), 맨해튼(Manhattan) 등 수십 개의 저명한 반진보주의 연구 집단이 형성되거나 대폭 확대됐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전임연구원 수는 3배로 늘고 헤리티지 재단 예산은 연 1100만달러에 이르렀다. 수많은 저명한 보수주의 지식인, 논객, 작은 정부 시장논리가 생산됐다. 이렇게 해서 좌파가 지배하던 60년대 미국의 이념지형은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중반기에는 압도적인 보수주의 지배체제로 전환됐다.

지난 세월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대한민국을 일으킨 공로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무가 토양을 잃는다면 어떻게 고사(枯死)를 면하겠는가. 만약 이들이 나라 잃은 유대인처럼 해외를 유랑하며 사업할 요량이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의 이념과 정체성에 장기적으로 과감히 투자해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