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24일 오전 6시53분 보도

개정된 상법 시행으로 ‘사채관리회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한국증권금융과 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기관들의 미흡한 준비로 증권사와 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들 증권유관기관은 이르면 올 하반기나 돼야 사채관리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증권유관기관 ‘나 몰라라’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서 회사채를 인수하는 증권사는 해당 회사채에 대해 사채관리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됐다. 법무부가 투자자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개정 상법을 통해 사채관리회사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도 이를 반영해 지난달 29일 사채관리회사와의 계약을 의무화하도록 ‘증권인수 업무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사채관리 업무란 사채의 상환청구·변제수령·채권보전 등의 업무를 말한다. 사채관리회사는 사채를 가진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종전에는 회사채 발행의 대표 주관 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사채관리 업무를 병행해 실질적인 사채권자 보호업무가 이뤄지지 못했다. 규정에는 은행 신탁회사 증권회사 증권금융 예탁결제원 등이 사채관리회사업무를 맡도록 돼 있다.

사채관리회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업무의 공공성과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 사채관리회사로서 적합한 예탁결제원과 증권금융 등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증권금융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신규 업무 승인 절차가 필요한 데다 내부적으로 관련 업무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금융투자협회에서 갑작스럽게 증권인수 업무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시장에 혼선을 줬다”고 말해 책임을 금투협회 등으로 돌렸다. 금투협회 관계자는 “사채관리회사 제도 도입은 상법 개정에 따라 예고된 상황이었다”며 “증권 유관기관들의 준비 상황과 증권인수 업무에 관한 규정 개정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증권사들과 사전 협의를 하지 못하는 등 제도 도입 초기라 손발이 맞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며 “사채관리 업무에 대한 기본 검토만 해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기업들만 ‘발동동’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행사인 기업과 증권사들만 애를 태우고 있다. 아주캐피탈이 지난 17일 11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이 대표 주관 업무를, 하나대투증권이 사채관리업무를 각각 맡았다.

증권사 채권인수부의 한 관계자는 “스탠다드차타드증권이 예탁결제원과 증권금융 등에 사채관리 업무를 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준비가 안 됐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당장 아주캐피탈이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하나대투증권에 사채관리 업무를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갈수록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어 조속한 시일 내에 증권 유관기관에서 사채관리 업무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