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40분 검은색 에쿠스 차량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석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위해 설치한 포토라인에 서지도 않았다.

일부 시위꾼의 방해로 혼란스런 와중에 “검찰에 왔으니까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곧바로 조사실로 직행했다. 그는 이날 밤늦게까지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인·허가 청탁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의혹과 사용처 등을 추궁받았지만 청탁 대가성은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 구룡포중 후배인 이동율 DY랜드건설사 대표(구속)에게서 받은 돈에 대해 “로비자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곳에 썼다”는 기존 주장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금감원 서울시…전방위 로비 흔적

검찰에 따르면 2008년 1월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전달하라며 이동율 씨에게 건넨 10억원을 이씨가 자녀 전세자금으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가 이씨에게 건넸다는 60여억원의 로비자금 중 현재까지 확인된 액수만도 21억원이 넘는다. 이런 금품수수 정황 외에도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의 인·허가 연루의혹을 짙게 하는 전방위 로비 흔적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인·허가 주무관청인 서울시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은행대출자금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 당시 청와대의 권재진 민정수석(현 법무부장관)을 접촉했다.

박 전 차관은 서울시 정무보좌역으로 있던 2007년 당시 강모 서울시 홍보기획관에게 전화해 “파이시티 사업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은 그동안 “이 전 대표를 만났지만 인·허가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며 연루의혹을 부인해왔다.

최 전 위원장의 로비의혹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는 방송통신위원장 시절인 작년 11월 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에게 “파이시티에서 금감원에 낸 민원을 신중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화오는 거 안 받을 수 없지 않나. 청탁시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며 ‘실패한 로비’라고 해명했다. 최 전 위원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었던 권재진 장관에게도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그의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이 2007년 대선을 전후해 파이시티 사업투자자를 모집하고 다녔다는 진술도 나오는 등 최 전 위원장이 ‘돈값’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파이시티 비자금 800억원 행방은

양재동 파이시티사업 뇌물스캔들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검찰도 모른다. 검찰은 “현재까지는 인·허가 로비의혹 부분만 수사한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곳곳에 뇌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우리은행 간부들에게 200억여원의 금품을 건네고 2009년까지 파이시티사업을 비롯한 8건의 국내외 부동산개발사업에 1조4434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전 대표는 이 가운데 800억여원을 횡령했다. 검찰은 이렇게 조성된 ‘검은 돈’이 양재동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곳곳에 뿌려졌을 것으로 보고 이번 수사에서 사용처를 확인 중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