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스윈던시 의회에서 일하는 크리스 제임스(54)는 최근 마법 같은 일을 겪었다. 망막 기능을 하는 전자칩을 이식받은 뒤 10년 전 잃었던 시력을 되찾았다. 제임스는 “전구가 폭발하듯이 갑자기 밝은 빛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사물을 뚜렷하게 볼 수는 없지만 앞에 있는 물건의 윤곽선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색소성 망막염으로 시력을 잃은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안구에 전자칩(망막 임플란트)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시력을 일부 회복했다고 4일 보도했다. 제임스는 이 같은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두 명의 영국인 중 한 명이다.

색소성 망막염은 일반적으로 사춘기 때 발병해 40~50대가 되면 시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거의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유전병이다. 퇴행성 질환으로 현재까지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다. 제임스의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은 흥분상태다. 데일리메일은 “이번 수술 성공은 2만여명에 달하는 영국의 색소성 망막염 환자뿐만 아니라 노환으로 인한 시력 감퇴자에게도 희망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술은 영국 옥스퍼드 안과병원의 로버트 맥라렌 교수와 킹스칼리지 병원의 팀 잭슨 교수 연구진이 함께 진행했다. 연구진은 10시간의 수술 끝에 제임스의 왼쪽 안구 뒤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의 레티나 임플란트(Retina Implant)사가 개발한 이 전자칩은 3㎟ 크기다. 이 칩에는 빛을 감지할 수 있는 1500개의 화소(픽셀)가 있다. 이 화소들은 안구의 간상세포(0.1럭스 이하 어두운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와 원추세포(0.1럭스 이상 밝은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 기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감지된 빛은 전기신호로 바뀌어져 망막세포를 자극한다. 이후 시신경을 통해 뇌로 시각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데일리메일은 “전자칩은 귀 뒤쪽 피부 아래 설치된 조절장치와 미세한 케이블로 연결돼 있다”며 “사용자는 조절장치와 연결된 외부 배터리 장치로 전자칩이 받아들이는 민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같은 전자칩을 이식받은 음악 프로듀서 로빈 밀러(60)는 “25년 전 시력을 잃은 이후 처음으로 총천연색이 들어간 꿈을 꿨다”며 만족해 했다. 색소성 망막염을 앓는 10여명의 영국인들이 다음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을 담당했던 잭슨 교수는 “지금까지 이 같은 수술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