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D램 반도체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법정관리 중인 업계 3위 일본 엘피다의 새 주인으로 사실상 결정됐다고 한다. 엘피다는 마이크론 측이 인수가격을 2000억엔 이상 제시했고 기술 연관성도 높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엘피다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24.7%로 2위인 SK하이닉스(23.0%)보다 높다. 1위(42.2%)인 삼성전자도 아직은 차이가 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가 확정되면 D램시장 판도가 크게 흔들릴 게 틀림없다. 당장 SK하이닉스는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해왔던 한국에 반격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 언론은 “엘피다가 파산하기 전에 세계 5위 D램 업체 대만의 난야와 제휴 교섭을 하고 있었다”며 “미-일-대만 연합이 한국 기업과 수위를 다투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기업과 비한국기업 연합 간 대결구도로 몰아가 한국의 독주를 막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업체들엔 이번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가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가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세화기술 등 제조공정 수준에서 삼성전자 및 하이닉스와는 차이가 있는데다 마이크론은 당분간 엘피다 정상화에 따른 생산차질과 재무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IT업계의 부침은 어느 분야보다도 심하고 빠르다. 휴대폰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노키아가 최근 몰락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더욱이 D램 1위 삼성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LED TV분야에서도 인텔 애플 소니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의 끊임 없는 견제와 추격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우리의 기업정책은 여전히 엉뚱한 곳만 향하고 있다. 동반성장의 기치아래 정치권, 정부할 것 없이 시장원리를 부정하는 규제만들기와 대기업 때려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