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중국과 무역을 하는 김훈 사장(35)은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중국 거래처 사장과 부산으로 갔다. 부산 벡스코의 바다 위 컨벤션인 ‘요트 비(Yacht B)’에 올라 소형 회의실에서 사업 협의를 20분 정도 한 후 광안대교~해운대~누리마루로 이어지는 1시간의 요트 투어를 즐겼다. 바다 한가운데서 석양이 지는 것을 바라본 중국 측 사장은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라고 흡족해 했다. 김 사장은 “부산 벡스코 덕분에 100만원 안팎의 적은 비용으로 바다 위 비즈니스를 갖게 됐는데, 계약이 정말 잘 풀렸다”고 기뻐했다.

수원에 사는 손덕헌 씨(54)는 한강난지지구 요트장에서 1년간 강습을 받은 끝에 며칠 전 요트 1급 자격증을 땄다. 그는 은퇴 후 요트를 한 척 장만해 레저관광사업을 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호화 스포츠로만 여겨졌던 요트·보트·윈드서핑 등 해양레저가 대중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급팽창하는 해양레저 시장

9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해양레저의 꽃으로 불리는 요트 인구만 면허 취득자 기준으로 2000년 61명에서 현재 3800여명으로 10년 만에 60배 늘어났다. 요트 등록도 2006년 2척에서 현재 4000여척까지 늘었다. 모터보트까지 합하면 1만대 이상에 이른다. 요트를 즐기는 인구도 5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요트를 대중 속으로 끌어들인 데는 경남 고성과 통영, 마산, 충남 보령 등 전국 30여곳에 운영 중인 요트스쿨의 힘이 컸다. 주5일 근무·수업제 영향을 받아 지자체와 요트협회에서 주로 운영하는 요트학교에서 연간 1만명 이상의 요트 마니아들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순호 대한요트협회 회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요트는 국민 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가는 단계에 ‘소수의 스포츠’에서 ‘대중적 스포츠’로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며 “우리도 이젠 마리나와 요트 등 해양레저산업의 르네상스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해양레저산업은 차세대 블루오션

부산 벡스코가 지난달 5일부터 운항에 들어간 요트 컨벤션 ‘요트 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비즈니스 관광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벡스코에 따르면 현재까지 요트 비 고객은 부산에서 열린 각종 컨벤션 행사와 연계한 투어를 비롯해 비즈니스 상담을 겸한 바이어 미팅 투어, 해외여행사 팸투어 등 컨벤션과 비즈니스 관련 이용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연인을 위한 프러포즈, 효도 행사 등 개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이벤트와 일반 기업의 마케팅 회의 등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요트 컨벤션 이용 요금은 1~4인 기준 1시간 50만원, 하루 300만원에 이른다.

국내 최초로 럭셔리 파워요트를 국산화한 현대요트는 최근 요트 기능과 함께 바닷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반잠수정 ‘라온하제’를 출시하며 해양레저 제품의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전남 대불산단의 JY요트는 3년 전부터 요트사업에 손을 대 작년 말 캐나다에 5억원짜리 요트 10척을 수출하는 성과를 냈다. 같은 지역의 푸른중공업은 작년 요트 수출로 8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대불산단뿐 아니라 부산 울산 경남 일대에서도 조선기자재 중소기업 50여곳 이상이 조선 불황 타개책으로 요트 관련 사업 쪽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자체들도 앞다퉈 요트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요트·보트 제조 클러스터인 전곡해양산업단지 일대를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이 결합된 ‘요트 허브’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도와 창원은 10일 국제보트쇼를 개최한다. 올해로 6회째 열리는 이 행사에는 20개국 160개사의 요트·보트 관련 제조업체들이 참여한다. 경남도 관계자는 “세일요트, 크루즈요트, 모터보트, 피싱보트, 마리나 설비 등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요트·보트 관련 제품들을 총망라한 세계 최대의 요트·보트 전시행사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경북도는 울진 후포항과 포항 동빈내항 일대를 환동해 크루즈요트의 중간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발맞춰 인구 5만2000여명의 울진군은 16일부터 24일까지 9일간 대한요트협회가 주관하는 ‘제5회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를 후포항에서 개최해 생태 해양레저 도시 울진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린다는 전략이다. 이 대회는 러시아와 미국, 영국 등 총 19개국 200여개팀 500여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대회로 국내에서 열리는 요트경기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조선강국, 해양레저산업으로 꽃 피워야

해양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요트·보트 등 해양레저산업은 관광과 스포츠, 제조업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세계 장비 제조 시장 규모만 무려 500억달러(51조원)에 달하는 블루오션으로 분석되고 있다.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전 세계 대형 조선시장 600억달러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다.

한국은 세계 대형 조선시장에서 5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탄탄한 조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고 천혜의 해양국가로서 입지조건, 정보기술(IT) 등 기술적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자동차 조선 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양레저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매년 100만척 이상의 신규 수요가 생겨나고 있지만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세계 수출시장 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요트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도 20여개, 종업원은 1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나마도 대부분 연매출 수십억원대의 영세업체들이다.
○마리나 시설 확충 급선무

전문가들은 해양레저산업을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키우려면 핵심 선결과제로 마리나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마리나는 요트와 보트의 정박뿐만 아니라 보관, 임대, 수리, 판매도 가능하며 생산시설과 레스토랑, 숙박시설에 이르기까지 종합 서비스 시설을 갖춘 해양레저스포츠의 핵심 인프라를 말한다. 현재 국내 마리나 시설은 전국 11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제대로 된 마리나 시설을 갖춘 곳은 부산과 통영 2곳뿐이다.

미국 1만7000여개, 독일 2400개, 일본 570개 등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규모다, 국토해양부는 2019년까지 전국 10개 권역에 마리나 32개소를 추가로 개발해 전국에 총 43곳의 마리나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5600여척의 요트를 정박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계획으로는 2015년까지 2만2000여척으로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국내 요트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지하철 역처럼 연안 20~50㎞ 구간마다 하나씩 마리나 시설을 조성하는 등 이른바 구간별로 촘촘한 역 개념의 마리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해양 인프라로는 요트가 다닐 수 있는 뱃길 조성이다. 최근 개통된 경인 아라뱃길은 요트 산업에 있어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강에서 출발해 서해안으로 이동하고 다시 제주도까지 갈 수 있는 장거리 요트 코스가 열린 셈이기 때문이다.

요트 업계 관계자는 “아라뱃길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마리나 시설과 요트 뱃길 조성 못지않게 세제 감면, 요트 관련 중소기업 육성 등 해양레저산업에 대한 총체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