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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의 시] 물목 -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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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목

    고영민




    봄날, 청둥오리들이

    물 홑청을 펼쳐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잔잔히 펼쳐놓은 원단을

    자맥질하여

    일정한 땀수로 꼼꼼히

    박음질을 하고 있다

    겨울 동안 덮고 있던 너희들의 낡고 큰 이불



    제법 큰 놈은 한 번에 두 땀, 석 땀씩

    꿰매고 있다



    꼼꼼하여

    바늘땀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헐겁던 수면이

    팽팽하다



    개심사 초입의 신창저수지에서 평화롭게 자맥질하는 물오리떼를 오래 바라본 적 있습니다. 부드러운 산 능선처럼 봉긋한 자태, 물 밑으로 부리를 박을 때마다 익살스럽게 드러나는 ‘잘 익은 엉덩이들’…. 그런데 고영민 시인은 청둥오리들이 ‘물 홑청’을 잔잔하게 펼쳐놓고 ‘바느질’하는 모습을 발견했군요. 겨우내 덮었던 ‘낡고 큰 이불’을 ‘일정한 땀수로 꼼꼼히/ 박음질을 하고’ ‘제법 큰 놈은 한 번에 두 땀, 석 땀씩/꿰매고 있다’니, 얼마나 꼼꼼했으면 바늘땀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니, 더구나 봄날 청둥오리들의 바느질로 ‘헐겁던 수면’이 팽팽해졌다니…. 진짜 꼼꼼한 것은 시인의 눈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봄의 물목에서 우리가 만난 또 한 폭의 멋진 수채화.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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