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분당에서 초기축구 클럽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구대회가 열렸다. 아침 일찍 많은 분들이 저마다 유니폼을 입고 모여들었다. 이어 시작된 개막식에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으로 축사를 하게 되었다. 연단에 올라 대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니 즉각적으로 “네” 하는 함성이 되돌아왔다. 질문을 던지면서 그렇게 활기찬 대답이 되돌아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상상 이상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나와 공을 차며 땀을 흘리고 친구들과 우의를 다지는 그런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사이클, 배드민턴, 등산 등 수많은 레저스포츠를 자발적으로 즐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행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살을 빼겠다는 목적으로 또는 부모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오래도록 그것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과정을 통해 성취감이나 절정감을 맛본 사람이라면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의미가 된다.

필자는 잊고 있던 밴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대학 때 함께 연주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다시 뭉쳐 그때를 회상하며 연주를 통해 행복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교수 후배는 새로 기타를 장만하고 악보를 찾아 연습을 하며 젊은 날의 추억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그 얼굴에 피어오르는 천진한 미소는 교수로서 수십년을 보내며 자신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듯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이 고귀한 행복을 왜 우리 자녀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일까. 학교 성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 이런 성취감과 행복감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다. 세계 어느 곳에 우리처럼 모든 것을 스펙으로 평가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삶이 고단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학창시절에 찾지 못하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육 당하듯 공부에 내몰리는 그런 아이들이 과연 자신의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 왜 아버지들은 조기축구를 통해 행복을 찾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든든한 무기를 갖도록 도와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와 절정감이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 성취감을 기대한다. 또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반복 수행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다. 어릴 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찾아주고 키워주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전하진 < 제19대 국회의원 hajin@haj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