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K사 공장은 1960년대부터 자동차를 생산해 왔다. 공장 설립 당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아니었지만 1970년대 초 공장지역 전체가 그린벨트로 묶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2856억원을 들여 지상 2층, 연면적 7만3560㎡ 규모의 생산시설을 늘리려다 1840억원의 개발제한구역보전 부담금 때문에 투자 계획을 접었다.

껌을 생산하는 유명 제과업체 B사는 해마다 늘어가는 폐기물 부담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껌 판매액은 매년 비슷한데 껌에 붙는 폐기물 부담금은 2000년 3억원에서 올해 31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판매 금액 대비 부담금 비율이 2000년 0.27%에서 올해 1.8%로 높아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민부담 경감 및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부담금 개혁방안’을 16일 내놓았다. 실효성이 없거나 지나치게 높은 부담금, 유사·중복 부담금 등을 개선하면 연간 1조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법정부담금은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국민과 기업에 반대급부 없이 물리는 돈이다.

◆“부담금 연간 1조원 줄일 수 있다”

전경련은 경유(디젤)차에 부과하는 환경개선 부담금과 건축물에 대한 개발제한구역보전 부담금, 껌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을 없애거나 요율을 낮추면 연간 6000억원의 국민·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복·유사 부담금을 통·폐합하고 체납 가산금을 낮추면 추가로 4000억원을 경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경유차와 껌에 붙는 부담금을 ‘시대에 뒤떨어진 부담금’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환경기준 강화와 기술 발전으로 유럽의 배기가스규제인 유로(EURO) 4, 유로 5 기준을 맞춘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오염 물질을 적게 내뿜는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부담금 폐지를 권고했으나 매년 4000억원에 이르는 수입 감소를 우려한 해당 부처(환경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자동차 업계는 지적한다.

껌에 부담금이 부과된 것은 1980~1990년대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져 껌 때문에 거리 환경이 나빠지는 사례가 크게 줄었는데도 관련 기업이 내는 부담금은 오히려 늘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0년 4조원이었던 부담금 징수액은 2002년 7조9000억원, 2006년 12조1000억원, 2010년 14조5000억원(94개)으로 늘었다.

◆기업 투자 막는 부담금

과도한 부담금 때문에 투자를 포기·축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개발제한구역보전 부담금이 대표적이다. 개발제한구역의 토지훼손과 손상된 토지에 설치된 건축물에 대해 이중으로 부담금을 물려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식품회사인 A사는 이미 토지형질 변경이 이뤄진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안에 공장을 증설하기 위해 2015년부터 817억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세웠다. 새롭게 개발제한구역이 훼손되지 않는 공장 증설인데도 17억원의 부담금이 부과돼 투자 규모를 줄여야 했다.

유명 자동차 부품 회사인 B사는 플라스틱 제품에 붙는 부담금이 매년 높아져 힘들어하고 있다.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재활용되고 차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기존 금속소재에서 플라스틱 소재로 전환하는 추세인데도 부담금 요율이 급격하게 올랐다. 이 회사가 낸 부담금도 2008년 3억500만원에서 2010년 16억원, 올해는 35억원으로 많아졌다.

유정주 전경련 규제개혁팀 차장은 “국세는 연체 가산금이 3%인데 부담금은 최고 18%에 이른다”며 “정부 소관 부처와 지자체 등이 부담금 폐지와 축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