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엘피다에 대량으로 모바일 D램을 주문했다는 대만 언론의 보도로 인해 16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6.18%와 8.89% 폭락했다. 삼성전자와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시장 반응은 과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애플이 엘피다와 이미 거래를 하고 있는데다 삼성전자와 엘피다의 기술격차를 감안하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애플 배신설’보다는 그리스 악재와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반도체 주가에 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엘피다+마이크론, 삼성전자 위협?

대만의 디지타임스 보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폭락으로 몰아갔다. 디지타임스는 △애플이 엘피다 히로시마 공장의 모바일 D램 생산량의 50%에 달하는 물량을 이미 주문했으며 △아이패드와 아이폰에 들어갈 D램을 추가 주문할 예정이고 △이로 인해 SK하이닉스가 타격을 받고 삼성전자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이 D램 물량을 엘피다에 몰아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보도는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엘피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는 미국의 마이크론이다. 애플이 이를 감안해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공급받던 물량을 엘피다로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모바일 D램 생산량 세계 3, 4위인 엘피다(점유율 17.0%)와 마이크론(5.4%)이 애플의 지원을 받을 경우 2위인 SK하이닉스(20.8%)와 1위인 삼성전자(53.8%)가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삼성전자 “신경 쓸 필요 없다”

디지타임스 보도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명백한 오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엘피다가 애플에 이미 모바일D램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디지타임스가 예측한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윤주화 사장도 “모바일 D램 부문에서 엘피다가 애플과 오랫동안 거래를 하고 있는데 마치 새롭게 거래를 하는 것처럼 알려졌다”며 “이로 인해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한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과 엘피다의 거래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만큼 과민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서도 엘피다의 히로시마 공장 시설이 낙후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엘피다 히로시마 공장은 40나노급 설비가 대부분인 반면, 삼성전자는 30나노급에서 20나노급으로 전환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앞서 있어서다.

보도가 사실이라고 해도 삼성전자 실적에 큰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김영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애플이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춘 만큼 삼성전자도 애플 비중을 줄여오고 있어 이번 소식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최도연 LIG투자증권 연구원도 “엘피다가 애플 물량을 가져간다고 해도 100%는 힘들고 최대 40% 수준일 것”이라며 “이 경우에도 삼성전자의 D램 매출 가운데 1% 미만, SK하이닉스는 2%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기둔화가 더 큰 걱정거리

엘피다 관련 소식만으로는 이날 삼성전자 주가 급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 보다는 글로벌 경기둔화가 보다 근본적인 위협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가 계속 둔화되면서 정보기술(IT)업종의 조정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둔화에 따른 업황 악화 우려로 외국인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 IT업종 전반에 대한 매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전날까지 삼성전자에 대한 공매도가 23만주에 달한 것도 악화된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반영한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증시에서 애플이 주춤하자 주가가 함께 움직이는 성향이 강한 삼성전자도 조정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풀이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유미/임근호/김현석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