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들기까지 10년 걸렸습니다.”

지난 2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K9 신차 발표회. 3년8개월 만에 기아차 신차 발표행사에 나온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표정엔 자신감과 만족감이 넘쳤다. 정 회장의 말처럼 K9은 전에 없던 각종 편의·안전장치로 무장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차다. 10여년의 현대·기아차 신차 출시 역사에서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신기술을 적용한 적은 처음이다.

1주일 뒤인 9일 강원도 양양 시승행사장. 다시 만난 K9은 기아차의 플래그십(기함)답게 운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출발지인 솔비치리조트를 빠져 나와 동해고속도로를 타기 전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를 만났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속방지턱을 통과했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차체에 별다른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다. 급커브길에서의 코너링도 쏠림현상 없이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앞 유리에 속도와 길안내(내비게이션) 표시가 나타나 편리했다. 국산차 중 처음 적용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기능 덕분이다. 하조대 톨게이트를 지나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가속페달을 밟자 부드럽게 치고 나간다. 시속 200㎞까지는 속도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갑자기 헤드업 디스플레이 오른쪽에 노란색 아이콘이 나타났다. 잠시 후 오른 쪽에서 차량 한 대가 쏜살같이 추월해 지나갔다. 사각지대의 차량 접근을 알려주는 ‘후측방 경보 시스템’이다.

시원하게 달리던 중 이번에는 운전석 시트 왼쪽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잠시 방심한 사이 중앙선을 살짝 넘자 촉각으로 위험을 알리는 ‘시트 진동경보 시스템’이 작동한 것.

목적지인 망상오토캠핑장에서 주차하기 위해 후진기어를 넣자 내비게이션 화면에 차량의 앞·뒤·좌·우가 보이는 ‘어라운드 뷰 기능’이 켜졌다.

K9에는 이런 기능들 외에도 현대·기아차 모델에 없던 첨단 기술이 먼저 적용됐다. 풀 사이즈 TFT-LCD 클러스터, 어댑티브 풀 LED(발광다이오드) 헤드램프, 전자식 변속레버, DIS 내비게이션 등이다. 텔레매틱 시스템 UVO(유보)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 제어로 시동을 걸고 온도 조절도 할 수 있다.

기아차가 K9의 경쟁 모델로 잡은 프리미엄 대형차의 지난해 내수 판매대수는 총 10만9000대다. 그 중 수입차가 6만대로 국산차(4만9000대)보다 많다. 수입차만 놓고 보면 5000만원 이상 모델의 점유율이 57%다. 기아차가 K9의 가격대를 5000만~8000만원대로 설정한 이유다. ‘더 뛰어난 성능과 편의·안전장치에 낮은 가격’을 무기로 프리미엄 수입차를 타는 고객층을 K9으로 옮겨타게 한다는 전략이다.

기아차는 6년 전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 ‘디자인 혁명’을 이뤘다. 이제는 성능에서도 고급 수입차에 뒤지지 않는다는 ‘당당한 주장’이 K9에 담겨 있다.

양양=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