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엘피다메모리에 대량 주문을 했다는 대만 언론매체의 보도에 지난 16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IT주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이면서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엘피다 모바일 D램이 이미 애플에 상당 부분을 공급되고 있어 현재와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영주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17일 "대만 매체 보도에는 현재 엘피다가 모바일 D램 중 절반에 현저히 미달하는 수량을 애플에 공급하는 것처럼 기술돼 있지만 지난 4월에도 엘피다가 생산하는 전체 모바일 D램의 45%가 애플 판매분이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엘피다가 애플로의 공급을 하반기에 전체 생산량 중의 50%까지 확대해도 지금 현재 모바일 D램 공급업체 사이의 애플 내 점유율에는 큰 변화 없다는 설명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이미 애플 모바일 D램 수요량의 50% 가량을 엘피다가 공급 중이었으므로 향후 애플이 히로시마 라인 생산량의 반을 가져갈 것이라는 뉴스는 기존의 주문 비중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이 새삼스럽게 악재로 부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애플의 요구 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에 대응을 안하고 있지만 현금이 급한 엘피다는 PC D램보다는 모바일 D램의 수익성이 그나마 좋아 애플의 지나친 단가 요구를 받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 애널리스트는 "애플로 매출이 증가한다는 것은 부품 공급 업체 입장에서는 양날의 칼과 같다"며 "애플이 낸드(NAND), 모바일 D램의 최대 고객이므로 애플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안정성 측면에서는 좋지만 워낙 판매 단가가 낮아 이익률에서는 사실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타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만 있다면 애플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 공급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득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NAND 주문 물량을 축소시키자 NAND 생산량을 줄이고 이익률이 좋은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생산을 증가시켜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의 NAND 생산 축소로 올해 하반기에 애플이 NAND 확보에 애를 먹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애플의 엘피다 주문 증가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애플향 매출 비중이 축소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애플 외 판매처만 확보된다면 한국 업체들에게 오히려 이익률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애플이 모바일 D램에 대한 삼성전자 의존도를 이미 상당히 축소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1분기 모바일 D램 시장점유율은 전분기의 53.5%에서 70.9%로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엘피다에 앞서 30나노급 미세공정에서 모바일 D램 양산을 본격 시작한데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생산량이 크게 증가해 자체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식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과점을 두려워해 일본 엘피다를 지원할 가능성은 있지만 수익성이 저조하고 부채 비율이 높은 엘피다를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박영주 애널리스트도 "애플은 최근 엘피다의 파산 보호 신청 상황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모바일 D램을 낮은 가격에 엘피다로부터 구매해 이익을 취하고 있을 뿐 엘피다를 지원할 의지는 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애플에게 높은 효용을 주는 것은 모바일 D램이 아닌 NAND여서 D램만 생산하는 엘피다를 지원할 이유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애플은 아이폰4S 16GB 제품과 32GB 제품을 199달러, 2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따라서 애플은 16GB NAND를 불과 1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해 소비자들에게는 100달러를 추가로 받고 있다.

박 애널리스트는 "애플에게 원가 대비 9배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모바일 D램이 아니라 NAND이어서 애플이 멀티 벤더 시스템을 확고히 하고 싶다면 그 대상이 NAND이지 D램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 보도는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지만 이 인수가 확정되기까지는 아직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아직 남았고 3개월이 지난 후 엘피다의 경쟁력이 추가 악화된 상황에서 마이크론이 이 인수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가 마이크론의 위상을 제고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지만 마이크론이 인수 과정에서 투입할 자금과 인수 후 엘피다의 뒤쳐진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투입할 자금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인수 후 마이크론과 엘피다의 D램 산업 내 위상은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송명섭 애널리스트는 "이번 건에 따라 엘피다의 파산 보호 신청 효과가 사라질 수 있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엘피다의 생산 설비를 동일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이 가져가면 어차피 엘피다의 설비는 그대로 살아남게 되어있다"며 "따라서 변하는 것은 없으며 애플이 초저가 구매 정책을 유지하고 원가면에서 크게 불리한 마이크론 엘피다가 애플 매출 비중을 더욱 올린다면 향후 이익률은 점점 더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