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권세가 드높아도 10년 버티기 힘들고,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재산이 많고 권세가 높아도 이 세상을 하직할 때 황천까지 짊어지고 갈 수는 없으며, 제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푸대접받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것을 말해준다.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어땠을까. 그 역시 ‘화무십일홍’의 이치 속에 스러져가는 한낱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황진이가 시시때때로 재조명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와 소통하는 이유는 뭘까.


◆‘화무십일홍’ 이치가 무색한 황진이

황진이는 미모가 수려했으며 뭇 남성들의 표상이었다. 절세가인이 탄생했다는 소문이 온 장안에 퍼졌고, 많은 사내들은 황진이를 한번이라도 품어보려고 속을 태웠다.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결혼 때 받은 패물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오는 속 빈 사내가 있는가 하면, 체면도 다 내던지고 그에게 접근해보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사내에게나 호락호락 정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사내들을 택하고 농락하며 즐겼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30년 면벽(面壁) 기도와 수도를 한 고승으로 세인들의 칭송 받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하루 아침에 파계시키고 반 실성한 사람으로 타락시킨 일은 아직도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자존심

신분 차별의 벽을 못 넘어 기생을 택해야 했던 삶과 벼슬길에도 나가지 못하는 미천한 여자로 살아야 했던 시대. 심지어 사생아로 태어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도 없었던 현실이 황진이를 자존심 강한 명기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보상심리로 숱한 남성편력의 길을 걷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살다 보면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도 많다. 어제의 적과 손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 자존심을 챙기고 사는 일이 예전보다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황진이의 자존심에 대리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대를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에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조롱하고 시대를 뛰어넘다

드라마 영화 책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황진이는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며 웃음을 파는 기생의 삶 이상을 보여주었다. 문장에 능통해 당대의 명사나 선비들과 기량을 나눴던 예인. 조선의 대표적 여류시인 허난설헌에 뒤지지 않는 문필가.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과 더불어 스스로를 송도삼절(三絶)이라 칭했다. 그런 황진이를 우리는 기생의 신분과 몸에 가두지 않게 된 것이다.

황진이가 단순한 기생이었다면 그의 자존심이 그렇게 높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가진 재능, 사내들과 견줄 만한 문장, 빼어난 미모의 3박자가 그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높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기생의 천박한 신분임에도 오늘날까지 황진이를 자유로운 풍류가로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능동적인 사랑이 오늘과 손잡다

황진이는 동시대 보편적인 여성들과는 달리 수동적인 사랑을 추구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흐르던 사랑 공식을 뒤엎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찾아다니며 선택했다. 화담 서경덕이 그에게 무너져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면 과연 그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황진이는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남성들에게서 자유롭고자 했던 만큼 그들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명창 이사종과 6년간의 동거생활을 할 때도 스스로 가산을 팔아 동거 기간의 절반인 3년 동안 생활비를 마련했다. 남성에게 복종하며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감당해내는 여인이었다. ‘19세기를 산 21세기 여인’이란 영화포스터 속의 카피처럼 황진이는 이 시대에 살았으면 불행한 신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오히려 오늘의 시대와 숨 쉬는 것이 어울릴 듯하다. 그것이 황진이가 오늘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진이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장수 기업의 성공 비결이 세간에 회자되는 것은 특정 분야에서 장수하기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100대 기업의 순위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요즘 기업의 생명력은 10년을 넘기기도 힘들 정도다. 남들보다 멀리 봐야 하고 빨라야 한다. 그것이 리더들의 숙명이다.

황진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의 삶은 늘 고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고단한 삶마저 달게 받는 것이 그들과 보통 사람의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다. 황진이가 21세기에 태어난 인재였다면, 또는 리더였다면 어땠을까.

경영자들은 인재경영에서 미래 비전을 찾으려고 한다. 더 나은, 더 많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인재는 자기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조직에 충성할 수밖에 없다. ‘어떤 학벌을 갖고 어떤 배경을 가졌는가’로 평가하는 기업이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일하고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하느냐’로 평가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 일이 될 것이다.

정리=이주영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opeia@hankyung.com



전미옥 <CMI연구소 대표 sabopr@hanmail.net>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홍보 전공 △한국사보협회 부회장, 한국청소년경제교육문화원 원장, 한국커리어컨설팅협회 홍보전문위원 △저서 ‘여성의 언어로 세일즈하라’ ‘스무 살 때보다 지금 더 꿈꿔라’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 ‘글쓰기 비법열전’ ‘성공하는 여성의 자기경영노트’ ‘성공하는 여자에겐 이유가 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