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에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할 조짐이다. 스페인 3위 은행 방키아에서 1주일 새 10억유로(1조4800억원)가량이나 인출됐다. 경기침체에 높은 실업률, 부동산 거품 붕괴 위험 등 삼중고가 겹치면서 글로벌 신용평가 업체 무디스는 스페인 주요 1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전격 강등했다. 스페인이 ‘제2의 그리스’가 되고 있다.

◆뱅크런에 정부 신뢰 상실

스페인 일간 엘문도는 17일 “스페인 정부가 지난 9일 방키아에 대해 국유화 방침을 발표한 이래 10억유로의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에서도 금융불안이 커지면서 초기 수준의 뱅크런이 발생한 것.

이에 따라 방키아 주가는 1주일 만에 29%나 하락했고, 연초 대비 주가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탄데르, BBVA, 방코포퓰라르 등 다른 대형 은행들의 주가도 올 들어 23~47% 하락했다.

스페인 금융권에 대한 불안이 커진 것은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전 대규모로 시행한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실화됐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 규모는 3070억유로다. 이 중 60%(1840억유로)가량이 부실자산으로 평가된다. 부동산 가격은 2007년 고점 대비 30%가량 하락했다. 추가 하락 우려도 크다.

스페인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페르난도 히메네스 라토르레 스페인 경제부 차관은 “최근의 자금 인출은 계절적 요인이 반영된 것으로 뱅크런이 생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방키아의 전체 예금 규모가 1120억유로에 달하는 만큼 10억유로 인출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가 방키아 국유화와 자본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제대로 조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적지 않다. 유럽연합(EU)과 약속했던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치솟는 스페인 국채금리도 부담이다. 8일 연 5.80%였던 10년물 국채금리는 9일 방키아 국유화 방침 발표 후 연 6.06%로 뛰었다. 17일엔 연 6.32%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스페인 은행들이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자금을 이용해 스페인 국채를 매집했던 점도 문제다. 국채 매집규모는 산탄데르 320억유로, BBVA 300억유로, 방키아 180억유로 등이다. 이들이 ECB에서 빌린 돈으로 부실 자산인 스페인 국채를 떠맡았다는 지적이다.

◆G8과 유로본드 논의 해법 찾을까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퇴출 우려에 스페인 전염 위기까지 커지고 있지만 유럽은 아직 명확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18~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유럽 내 반(反)긴축 움직임으로 수세에 몰린 독일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단은 ‘성장과 재정관리 모두 중요하다’는 식으로 소극적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신임 대통령이 첫 국제회의에서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최근 독일 측이 유연하게 허용 방침을 시사한 유로본드(유로존 공동 국채) 발행 계획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유로본드 법제화 방안이 유럽의회라는 ‘뒷문(우회로)’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며 “이는 정부 주도로 법안이 발의될 때 생기는 각종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