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비용 담보제공 명령’ 신청이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한 사실이 23일 확인됐다.

국세청은 최근 소송대리인을 통해 ‘권 회장이 소송비용 담보로 1억5200만원을 공탁하도록 명령을 내려달라’는 취지로 서울행정법원 11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은 소장에서 “원고(권 회장)는 총 3051억원의 종합소득세 및 지방소득세 부과처분을 받았지만 재산의 대부분은 해외법인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며 “원고가 본안소송에서 패소하면 현실적으로 소송비용을 회수할 길이 없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소송비용 담보제공 명령’은 주로 상대방이 외국인일 때 제기하는 소송이다. 외국인이 국내의 소송에서 졌을 때 그 비용을 물릴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담보물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행정소송법(제8조2항)과 민사소송법(제117조1항)도 소송비용의 담보를 명하기 위한 요건으로 ‘피신청인이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담보가 부족한 때에도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국세청은 담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 같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신청인은 피신청인이 대한민국 내에 주소를 둔 거주자임을 전제로 종합소득세 등을 부과했는데 부과처분 사유와 반대되는 전제로 이 사건 신청을 하고 있다”며 “신청인 스스로 자신의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이 잘못됐음을 자인하는 것이 되므로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게 돼 소송비용 담보명령의 요건을 흠결하게 된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