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란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이에요. 거기에 그렇게 실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죠. 그 감정을 가만히 내려놔야 괴로움에서 멀어질 수 있어요.”

23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희망대토크’ 강연에 앞서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고이케 류노스케(小池龍之介·34·사진) 스님은 현대인의 괴로움과 화, 행복의 실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 도쿄대 출신으로, 야마구치의 스키요미지 주지로 있는 그는 국내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화내지 않는 연습》《생각버리기 연습》등 6권의 저서가 한국에서 70만부 가까이 팔렸다.

그런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초청일정이 취소돼 두 번의 방한 기회를 놓쳤다는 그는 “준비한 주먹밥을 먹었더니 어느새 서울이더라”며 “한국과 일본은 너무 가까워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그는 아주 까다로운 채식주의자다. 참기름이나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을 두른 요리조차 멀리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투명한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통역할 때 잠깐씩 명상에 들기도 한 그는 “괴로움의 본질은 인간관계에 있다”고 했다.

“인간관계가 나빠지면서 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죠. 서로 싸우는 동안 각자 자기만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지요.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의 CEO면 뭐해요. 관계가 틀어져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거죠.”

그는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대학시절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출가를 결심했고, 주지 스님인 아버지와 절에서 살면서 어머니와 겪었던 갈등으로도 “굉장히 흔들렸다”고 했다.

그는 “괴로움, 불안, 화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원시시대에 다른 경쟁 부족이나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는 위험 상황에 처한 개인의 생존에 그런 감정신호가 도움이 됐다는 것. 자연히 뇌에서 그런 좋지 않은 감정을 유리한 것으로 느끼게끔 됐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찾아서라도 화를 내는 습성이 있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죠.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직접적인 위험 상황에 맞닥뜨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그는 요즘 사회가 화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자기실현’이나 ‘성공’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정도면 됐다’ 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죠. 불교에서는 ‘자아 버리기’를 얘기하잖아요. 자기 자신의 색깔을 짙고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옅더라도 만족하는 데 행복이 있다는 가르침이죠.”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