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포괄수가제 시행방침을 놓고 의료계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돼 버렸다. 의사협회 등이 전면 거부를 선언하고 파업도 불사할 태세다.

의료 공급자들이 이토록 격렬한 반대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면 의사들의 불필요한 진료 행위를 줄여 진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의 개별 진료 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왔기 때문에 불필요한 검사와 처치가 많다는 논리다.

보건복지부는 한발 더 나아가 전체 의료비뿐만 아니라 개별 환자들의 의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도입시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급여성 진료나 그렇지 않은 비급여성 진료에 관계없이 환자가 20%만 부담하기 때문에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착각이다. 정부는 재정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만 펴고 있다.

포괄수가제가 전면 확대되면 의료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 예컨대 특정 질병 혹은 시술에 대한 총 치료비를 정해 놓고 지급하는 제도가 포괄수가제인데 의사가 원가를 줄일수록 이윤이 많이 발생하는 제도를 정부가 앞장서서 도입하는 꼴이다. 결과적으로 싼 진료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식당에 탕수육 값을 동일하게 1만원만 받으라고 강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진료비 정액제는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는 국민의 선택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가장 좋은 진료가 아니라 가장 경제적인 진료를 하게 되니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의사협회, 병원협회와 외과·산부인과·안과·이비인후과학회, 개원의협의회가 정책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정부는 의료비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니 현재 의료 행위마다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에서 모든 행위에 평균값을 정해 포괄수가제로 전환하면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너무나 단순하고 순진한 발상이다.

임상 전문가들은 환자 개인마다, 질병마다 증상이 다르고 의료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포괄수가제 적용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백내장을 예로 들어보자. 백내장 수술에는 점탄물질 인공수정체 관류액 등 여러 재료들이 필요하고 각 재료는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진료비가 정해져 있다면 어떤 의사가 비싼 재료를 사용하겠는가.

30만원짜리 비싸고 좋은 인공수정체를 사용하나 10만원짜리 값싼 수정체를 사용하나 동일한 진료비를 받는다면 의사가 비싼 수정체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선택권조차 없어 환자는 진료 내용을 모른 채 싸구려 진료를 받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신기술이 나와도 환자에게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해도 진료비를 추가하거나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의료 서비스라고 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의료 공급자들이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포괄수가제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는지 되짚어보자.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 출범 당시 각 의료 행위에 대한 원가 계산 없이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를 기반으로 시작했다. 최근 의료비가 급증하고 재정이 불안한 것은 행위별 수가제라는 진료비 지급 제도 탓이 아니라 2000년 의료보험이 건강보험으로 바뀔 때 예방 재활 등 보장성을 확장해 가면서 이에 상응하는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건강에 대한 국민의 요구 증대, 의료기술 발달, 인구 고령화 등이 맞물려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정부에서 보장성 강화 원칙을 구현할 충분한 재정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포퓰리즘적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발생한 필연적 귀결이다. 행위별 수가제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을 행위별 수가제라는 진료비 지급 제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하면서 해결책으로 포괄수가제를 들고 나왔다. 정부는 제도 시행에 앞서 원가 조사 등 사전 준비를 엄밀하게 진행하지 않았고 더불어 의료계의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병원은 검사 진료 투약량 등을 줄이고 입원일수를 단축할수록 이익이 많아진다. 단기적인 의료비 증가는 막겠지만 부실 진료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어진다.

의료정책을 둘러싼 의·정 간 갈등은 결국 제한된 건보재정에 있다. 정부는 연간 40조원가량인 건강보험 재정의 범위 내에서 운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급 종합병원, 병·의원, 약국, 한의원, 치과병·의원 등이 나눠 갖다 보니 의료계는 항상 낮은 수가에 시달려왔다. 결국 재정 부족분을 ‘지출 줄이기’를 통해 만회하는 조치가 포괄수가제 시행의 배경인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7개 질병의 포괄수가제 적용도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7개 질병은 전형적 외과 행위로 진료비용이 터무니없이 늘어난 진료 행위가 아니다. 포괄수가제는 의료 서비스 질 저하, 환자의 입원일수 축소, 검사와 진료 최소화로 부적절한 퇴원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례로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산부인과의 경우 제왕절개 분만시 환자의 상태나 리스크가 큰 상황 등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오래 전에 여러 대학병원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한 바 있지만 결국 대부분 산부인과 교수들이 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중지했다. 포괄수가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려면 우선 의료 전문가와 공급자 주도로 정부가 합의에 이르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포괄수가제는 다수의 임상교수들이 주축이 돼 분류체계를 결정하고 수가를 합의한 뒤 대상 병원을 선정했다. 정책이 시장을 신뢰하고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사례다.

우리도 합리적인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려면 의료 전문가를 주축으로 원가 수준 결정, 질병별 분류체계 확립 등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이근영 < 한림대 의대 교수 >

△중앙대 의대 의학과 △중앙대 의대 생리학 박사 △한림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대한산부인과학회 보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