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 "400억 들인 '위험한 관계'…칸 영화제서 극찬 받았죠"
‘외출’ ‘호우시절’의 허진호 감독(49·사진)이 연출한 중국 대작영화 ‘위험한 관계’가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한국과 중국의 톱스타 장동건과 장쯔이, 장바이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바람기가 넘치는 두 남녀가 정숙한 한 여인을 유혹하자는 내기를 벌이면서 파멸로 치닫는 이야기. 18세기 말 프랑스의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원작을 각국에서 수차례 영화화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이재용 감독이 연출하고 배용준 전도연 이미숙이 주연한 ‘스캔들’로 리메이크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칸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호우시절’을 함께 제작했던 중국 회사가 ‘위험한 관계’를 1930년대 상하이를 무대로 만들자고 제안해왔습니다. 중국 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영화인들을 필요로 하게 된 거죠. 원작 소설은 남녀 간 심리묘사가 뛰어났습니다. 언어 장벽이 있다고 해도 감정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호우시절’이 32일 동안 31회차를 찍은 소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3500만달러(약 400억원)를 투입한 대작이다. 글로벌시장을 겨냥해 중국식 예술영화를 벗어나 상업적으로 만들기로 했다. 중국 측이 허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이유는 그가 예술성과 함께 상업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재용 감독에게 물어보니 시대를 바꾸면 새로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하더군요. 1931년 상하이는 서구 세력이 진출해 있고, 경제적인 번영과 빈부격차가 컸습니다. 부자들은 퇴폐적인 문화를 즐겼고요. 원작 속 프랑스 혁명 직전의 풍경과 같았어요.”

원작에서 주인공인 대법원장 부인은 한국판 ‘스캔들’에서 조선시대 과부로 바뀌었고 여기서는 존경받는 교육자 집안의 남편과 사별한 자선사업가로 설정됐다. 이 배역을 맡은 ‘파이란’의 장바이즈와 난봉꾼역 장동건 간의 관계도 다르게 가져갔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너무 비슷해서 다치고맙니다. 원작에서는 장바이즈 역할이 사회적으로 몰락하지만 이번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동건을 캐스팅한 이유는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한류스타이기 때문. ‘착한 남자’ 장동건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옴 파탈(나쁜 남자)’ 역을 원했다고 한다. “장동건은 중국어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촬영장에 오더군요. 제가 현장에서 대사를 바꿔도 잘해냈습니다. 농담삼아 ‘천재’라고 불렀습니다. 장쯔이는 데뷔 무렵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장바이즈는 스스로 영화 속 배역처럼 화려하지만 외로운 부분이 많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는 세 배우의 균형을 잡는 데 힘썼다. 장쯔이와 장바이즈가 한껏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불안감을 핸드헬드 기법으로 잡아냈습니다. 다큐적인 느낌이 날 정도로요. 영화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300여컷의 CG(컴퓨터그래픽)를 추가해야 합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장바이즈는 “2005년 ‘무극’에 출연했을 때 상대역 장동건이 ‘오빠’ 같았다면 이제는 성숙한 남자 향기가 난다”며 “아버지가 된 후 신비감도 생겼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는 올 하반기 중국에서 개봉한 뒤 오는 10월께 한국에서 선보인다.

칸=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