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시원하다. 야구는 호쾌하다. 푸른 잔디밭, 쾌속으로 날아가는 하얀 공,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관중들. 던지고 받고 치고 달리는 역동의 순간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매순간을 휘감는다. 인류의 먼먼 야생의 기억을 되살려 벌판 위의 전투를 재연하는 선수들. 시원한 여름 저녁 도심의 푸른 잔디밭 위에서 원시시대의 단순하고 격렬한 몸동작들은 다시 살아난다.

야구는 짜릿하고 드라마틱하다. 패색이 짙은 9회말 투 아웃 이후에도 역전이 가능하다.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늘 뒤처지는 사람,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면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해 승진에 좌절하는 직장인, 이 모든 사람들에게 야구의 역전 드라마는 그 자체로 꿈과 희망이다.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이런 이유들만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작전은 성공과 실패의 법칙을 지배하는 예측 프로그램과 같다. 번트를 할 것인가, 도루를 할 것인가, 변화구로 승부할 것인가, 빠른 돌직구로 제압할 것인가…. 예측과 선택이 충돌하고 지략과 무심(無心)이 격돌한다. 성실과 지혜로 삶의 어려움을 돌파해야 하는 우리들 인생. 이런 인생을 닮은 게 바로 야구다.

보다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구조주의자들에 따르면 야구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법을 모방한다고 한다. 야구의 시작과 끝은 집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을 떠나 채집하고 경작하고 사냥하는 등 온갖 고생살이를 하다 집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삶의 방식을 인류는 몸에 익혀 왔다. 야구의 근본 규칙이 이와 똑같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공격 선수가 홈플레이트를 밟을 때다. 집(home)으로 돌아오는 귀환담의 스포츠 심리학이 야구의 이면에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프로야구 사랑이 뜨겁다. 주말이면 전 구장이 만석이다. 올해는 700만관중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주목을 잘 받지 못하던 선수들로 구성된 만년 하위팀이 선두에 오르는가 하면 내로라하는 유명 선수들이 소속된 팀이 하위권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개인의 재능과 기량보다 중요한 게 공동체 정신이란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기업 경영에서도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경영철학도 있지만 노사화합과 대동단결이 기본이란 걸 우리사회는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는 우리의 조상을 생각하게 하고, 규범과 관습을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게 하며, 삶의 지혜와 성실성을 일깨워준다. 뒤처진 이들에게는 희망을, 앞선 이에게는 겸손을 가르치는 야구. 그러나 선수와 감독, 관중이 하나가 돼 연출하는 지덕체(智德體)의 향연이야말로 야구의 진정한 감동이다.

김희옥 < 동국대 총장 khobud@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