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삼성블루윙즈 입단, 프로축구 승부조작 개입, 납치범으로 전락.’

한때 한국 축구의 차세대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엘리트로 각광받던 한 축구선수의 막장 드라마 같은 인생역정이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된 전 국가대표 공격수 김동현 씨(28)가 장본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26일 새벽 2시20분께 서울 청담동 빌라 지하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박모씨(45·여)를 흉기로 위협해 차량에 태운 뒤 금품을 빼앗으려 한 혐의로 김씨와 프로야구 투수 출신 윤찬수 씨(26)를 29일 구속했다.

범행 전날인 25일 오후 8시께 서울 청담동 한 영화관 앞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를 훔친 김씨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다 벤츠 승용차를 운전하던 박씨를 발견, 그의 집까지 따라가 강제로 차에 태운 뒤 100여m를 운전했다.

박씨는 그러나 김씨가 범행을 공모한 윤씨를 차에 태우려고 속도를 늦춘 사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뒤 뒤따르던 택시기사 조모씨(54)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택시가 뒤쫓아오자 놀란 김씨는 차를 버리고 달아나다 사건 발생 20분 만에 범행 현장 근처에서 붙잡혔다. 이어 윤씨도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에 잡혔다.

김씨는 지난해 9월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받고 K리그에서 영구 제명됐다. 경찰은 “축구선수 활동이 불가능해진 김씨가 최근 사업에도 실패하면서 경제난을 겪자 상무 시절 친하게 지냈던 윤씨를 설득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었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끝없는 추락’에 축구계는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